올해도 국내 극장가는 한국영화와 미국영화의 독무대다. 7월까지 두 나라 영화의 관객점유율은 96.3%. 나머지 국가 영화들은 4% 남짓한 좁은 시장을 놓고 다투며 관객 1만명 돌파에 환호한다. ‘마이너 리그’의 최강자는 단연 일본이다. ‘메종 드 히미코’가 9만 2,000명 관람이라는 ‘대박’을 터트리는 등 일본영화는 꾸준히 1만명 내외의 관객을 동원하며 조용한 흥행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한류에 비하면 잔물결과도 같은 ‘일류’(日流)의 중심에는 오다기리 조(30)가 있다.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피와 뼈’ 등 화제작마다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상영 중인 ‘유레루’와 17일 개봉하는 ‘빅 리버’를 포함해 그의 개봉작 만 올해 4편이다. 그는 쓰마부키 사토시와 아사노 다다노부를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배우로 꼽힌다.
폭 넓은 연기로 일본영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오다기리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연기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저 달라진 헤어 스타일과 옷 등으로 어떻게 다른 인물을 창조할지 고민했을 따름입니다.”
‘빅 리버’는 9ㆍ11 이후 유색인종에 적대적인 미국의 스산한 풍경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사막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세 남녀의 우정과 갈등 속에는 삭막한 고독이 스며있다. 부모가 이혼한 후 극장을 전전하며 일찌감치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그의 어린시절과 미국 유학시절의 고독이 오버랩 된다.
하지만 그는 “극중 인물처럼 그리 무심한 듯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다”고 말한다. “저도 고독과 불안감을 매번 느끼고 있어요.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려고 하진 않아요.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려 했는데 그것을 제 원래 성격으로 받아들인다면 저야 기분 좋죠.”
불고기를 좋아하는 애한파(愛韓派)인 그는 3월 방한했다가 900여 명의 광적인 국내 팬들을 접하고 화들짝 놀랐다. “한국은 예전부터 좋아하는 나라였는데 애정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한일간 문화교류의 폭이 더 넓어져 질 높은 영화를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학시절 입학원서에 연출학과 대신 연기학과로 잘못 표기해 배우의 길을 접어든 그는 최근 음반을 내며 가수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만능 엔터테이너답지 않게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작은 영화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그가 한국 팬에게 보내는 당부 한마디. “스펙터클이 넘치는 블록버스터 영화도 좋지만 일본의 인디 영화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 일본영화가 사는 법
적게 개봉 오래 상영 "마니아를 잡아라"
10일 개봉한 오다기리 조 주연의 '유레루'가 15일까지 모은 관객은 1만4,000명. 200만 관객은 들어야 흥행 좀 됐다는 소리를 듣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유레루'의 흥행성적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전국 6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얻은 결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케팅을 담당한 프리비전 관계자는 "너무 흥행이 잘 되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영화의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의 비결은 적게 개봉해 장기간 상영하는 데 있다. 확실한 마니아 층이 있기에 초기 바람몰이보다 꾸준히 상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1998년 일본대중문화 개방 이후 실패를 거듭하며 터득한 생존법이다. 올해 일본영화 최고 히트 상품인 '메종 드 히미코'는 1월 개봉해 6개 이하의 극장에서 4개월 가까이 상영되었다.
7월 1~12일 열린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은 탄탄한 일본영화 관객층의 존재를 보여주는 행사였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스폰지하우스 1개 상영관에서 진행된 이 행사에는 1만 3,0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주최사인 스폰지는 인기작 5편을 골라 13~26일 앙코르 상영회를 따로 열었다. 스폰지의 관계자는 "일본영화의 관객층은 확실하다. 충성도도 높아 흥행 예측이 용이하다. 그러나 소수가 열광할 뿐 주류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강점이 약점인 셈"이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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