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복이는 수형 생활 할 때는 ‘여엉 복’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복 많이 받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도울 것이다. 앞으로 큰 일을 할 것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신영복(65) 교수의 대학 동창이 술 자리에서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 말처럼 신영복 교수는 20년 20일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었지만 출옥 후에는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17년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25일 정년 퇴임하는 그에게 특별한 선물이 준비됐다. ‘신영복 함께 읽기’(돌베개 발행)라는 기념 문집이다. 그를 아끼는 동료 교수, 친구, 제자, 은사, 교도소 동료 등 60여명이 ‘신영복 선생을 거울로 삼고 닮아가려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공동 저자로 참가했다. 그의 삶에서 영감을 얻거나, 인연을 맺었거나, 책을 읽을 읽고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 받고 88년 가석방돼 이듬해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그 사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 등의 저서로 독자에게 감동과 휴식, 위안을 주고 자기 성찰과 사색의 길로 인도했다. 나아가 자기만의 고유한 한글 서체를 개발했다.
‘신영복 함께 읽기’에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우리의 개혁과 진보는 ‘투쟁 패러다임’의 덫에 갇혀있다”고 지적하고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 조직해 내고 키우는 일이라는 신영복 교수의 주장을 새겨듣자”고 제안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위기에 처한 진보주의는 신 교수의 인간 해방적ㆍ문명 성찰적 진보주의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신영복 교수의 글씨는 그림 같은 맛을 풍기고 그의 그림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문인화라 할만 하다”고 평가한다. 또 그가 옥중 생활을 통해 독특한 글씨체를 완성한 점을 두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위대한 예술가들은 그처럼 외롭고 열악한 삶의 조건, 예술적 환경에서 자기를 지켜왔다”며 감탄한다.
지인들은 ‘인간 신영복’의 모습을 전한다. 가정 교사 시절, 제자인 심실 유니원커뮤니케이션 회장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엔터테이너이자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휴머니스트”로 당시 서울대 상대 학생 신영복을 회상한다. 60년 가정 교사 시절, 그는 유치원생 심실과 소꿉놀이를 하는가 하면, 각본 쓰고 역할을 나누며 효과음까지 만들어 드라마처럼 녹음기에 녹음하기도 했다. 가정 교사를 그만 둔 뒤에도 자주 찾아와 세상 이야기를 들려 주거나, 일 하는 아주머니의 군대 간 아들에게 편지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고교 동창 김문식 씨는 그를 공부도, 글 짓기도, 운동도 모두 다 잘한 다재다능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60년대 초반, 자신이 돈이 없어 이사를 못하게 되자 손수레를 빌려와 동대문에서 노량진까지 함께 밀고 간 추억도 들려 준다.
이 밖에 문행주 화순군 의원은 대전교도소 경비교도대원 시절 만난 신 교수가 야근을 서고 있던 자신을 위해 군대 이야기, 육사생도를 가르쳤던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고 회상한다. 그 보답으로 그는 바깥 세상의 소식을 물어다 주는 제비 노릇을 했다고.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 시대 한 지식인의 곡절 많은 삶, 그런 가운데서도 결코 잃지 않은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 죽음의 위협 속에서 벼려 온 깊은 사유와 예술 세계가 손내민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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