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찾지 못할 줄 알았던 선조들의 흔적을 남아있게 해준 분들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이즈미 주니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의 신사참배 소식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던 15일. 전남 진도 한 마을에서는 일본인 20여명이 주민들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광복절61주년에 맞춰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1597년 정유재란때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한 일본 수군들의 후손. 당시 바다에 떠다니던 100여명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준 주민들에게 400여 년 만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였다.
이날 방문한 후손들은 당시 왜군 대장 중의 하나로 이곳서 숨을 거둔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 장군 현창 보존회의 무라세 마키오(村瀨牧男) 사무국장과 히로시마 슈도대학의 히구마 다케요시(日畏建壬) 교수와 학생 등 21명. 이들은 마을에 도착한 직후 주민들을 만나 “적군의 주검을 수습, 묘를 만들어 지금까지 잘 관리해줘 정말 고맙다”며 히로시마 특산품인 타월과 술 등을 전달했다. 또 “앞으로 해마다 방문,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참배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어린 시절 왜덕산(倭德山)의 유래에 대해 들었던 얘기들을 전해주며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마을 방문에 이어 후손들은 현재 50여기의 묘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진도군 고군면 내동리 왜덕산을 찾아 참배의식을 올렸다. 일본 승려가 원혼을 위로하는 독경을 한데 이어 함께 온 대학생들이 원무를 추며 조상의 명복을 비는 제사의식인 봉오도리(위안 춤) 등을 펼쳤다. 진도군은 당초 일본인 방문단과 함께 일본수군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를 준비했으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소식이 전해진 후 조촐한 씻김굿 공연으로 대신했다.
왜덕산의 존재를 일본에 처음으로 알린 일본 히구마 다케요시(64) 교수는 “신사참배를 한 일본인들도 있지만 이렇게 여기에 온 일본인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며 “이 전쟁터를 앞으로 화합과 우정의 장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동네 이기수(80) 할아버지는 “동네 어른들이 왜덕산에 일본인들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대를 논밭으로 개간할 때에도 건드리지 않고 남겨두었다”면서 “기왕에 맺어진 인연인 만큼 서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손들은 왜덕산 참배에 이어 고군면 벽파진의 이순신 전첩비와 진도대교 전망대에서 명량해전 현장인 울돌목 등을 둘러보았다. 진도군은 명량해전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료발굴작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현재 방치돼 있는 왜덕산 일대를 개발해 일본 관광객들의 방문코스로 조성할 계획이다.
진도=글ㆍ사진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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