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풍경’에 앞서 이 난에 연재된 ‘시인공화국 풍경들’을 ‘모국어의 속살’이라는 표제로 묶어 출간하며, 나는 그 책을 가까운 친구 두 사람에게 헌정했다. 헌사를 가족 바깥 사람에게 건넨 건 그 때가 처음이다. 나는 책 앞에 덧붙이는 헌사에 헤픈 편이다. 세 권에 한 번 꼴로는 헌사를 쓴 듯하다. 그간 내 헌사의 수신인은 아내, 누이, 조카 같은 가족이었다.
내 경우가 아니더라도, 헌사의 대상으로 가장 흔히 이름이 오르는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다. 가족에게 건네는 헌사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시인 황지우가 세 번째 시집 ‘나는 너다’(1987)에 붙인 문장이다. “나를 길러주신 나의 장형(長兄) 우성(宇晟) 스님께, 세상의 부채(負債)를 지고 지금도 땅밑을 기는 나의 아우 광우에게,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형제들에게 바칩니다.”
이 헌사에 담긴 정보는 시인의 형이 승려고 시인의 동생이 혁명가라는 사실이다. 둘 다 예사로운 직업은 아니다. 시인이라는 직업도 그렇다. 사실, 그 시절 황지우의 직업은 시인말고는 없었다. 불우하다면 불우했던(그 시기의 황지우에게도 이미 명성이라는 자산은 넘쳐났다. 그의 재능은 충분히 보상받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고, 그래서 주류 사회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이 청년 시인의 이미지는 승려 형과 혁명가 아우의 이미지와 버무려지며 기이한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시집 후기의 “선사(禪師)들은 검객을 닮았다. 내 골통을 반(半)으로 가르는 가장 빠른 생각은 메모다. 메모랜덤: 기억을 위한 부적(符籍)!”이라는 문장은 이 아우라에 더욱 두터운 신비의 켜를 보탰다. 시인은 후기에서, 이 문장에 이어, 시집 ‘나는 너다’에 묶인 작품들이 “두 번째 시집을 묶을 때 함께 넣을까 말까 망설였던, 메모 같은 시들”이라며 사양지심을 보였으나, 이 사양의 몸가짐은 그보다 앞서 발설된 선사와 검객의 유비에서 이미 효력이 반감될 운명이었다. 선사(승려)는 검객(혁명가)을 닮았다! 그리고 선사와 검객 사이에 끼인 우리 시인은 선사로서, 검객으로서 (궁핍한 시대의) 기억을 위한 부적을, 메모랜덤을 날린다! 그의 가족은 자연스레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의 성(聖)가족을 연상시켰고, 그 연상의 포물선은 강렬한 연대와 사랑을 함축하는 헌사 마지막 대목 ‘이 세상의 모든 형제들’에서 최고점에 이르렀다.
친구에게 건네는 헌사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가 ‘어린 왕자’(1943)에 붙인 헌사일 테다.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싸여 있던 때 뉴욕에서 ‘어린 왕자’를 탈고한 생텍쥐페리는 ‘레옹 베르트에게’라는 헌사 뒤에다 이 헌사에 대한 ‘변명’을 덧붙였다.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것을 어린이들이 용서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겐 진지한 핑계거리가 있다. 이 어른은 세상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다. 내겐 또 다른 핑계거리도 있다. 이 어른은 뭐든지 이해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까지도 말이다. 내겐 세 번째 핑계거리도 있다. 이 어른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그는 그 곳에서 춥고 배고프다. 그는 위로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 모든 핑계거리로도 모자란다면, 나는 이 책을 예전 어린 시절의 이 어른에게 바치고 싶다. 어른들은 모두 한때 어린이들이었다.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지만.) 그러니 나는 내 헌사를 이렇게 고친다.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레옹 베르트(1878~1955)는 소설가 겸 미술비평가다. 생텍쥐페리보다는 스물두 살이나 손위였으나, 1931년 처음 만난 뒤 마음이 통해 단박 친해졌다. 견결한 평화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베르트는 생텍쥐페리와 닮은 점이 거의 없었지만, 우편항공기 조종사들말고는 생텍쥐페리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았다. 그는 스위스 국경 부근의 산악지대 쥐라에 처박혀 독일군의 프랑스 점령시기를 보냈다. 생텍쥐페리가 최고령 참전 비행사로 정찰 비행을 하다가 실종된 뒤 조국이 해방되고 나서야, 베르트는 자신에게 건네는 헌사가 담긴 친구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
학술서적의 경우엔, 가족이나 친구 못지않게 헌정 대상으로 흔히 이름이 오르는 사람이 스승이나 동료일 테다. 비평가 김현(1942~1990)은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에 대한 에세이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1987)을 동료 비평가 김주연에게 헌정했다. 그는 “주연에게, 기독교를 둘러싼 너와의 오랜 토론이 이 책으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에, 이 책을 너에게 바친다”고 썼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주저 ‘존재와 시간’(1927)을 자신의 프라이부르크대학 스승 에드문트 후설(1859~1938)에게 헌정했다. 이 책의 초판에는 “존경과 우정으로 에드문트 후설에게 바친? 1926년 4월8일 바덴주(州) 슈바르츠발트의 토트나우베르크에서”라는 헌사가 붙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재판(再版)에서 이 헌사를 지워버렸다. 저 자신이 참여했던 나치 정권이 유대인 탄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스승 후설은, 생텍쥐페리의 친구 베르트처럼, 유대인이었다.
초판과 개정판의 헌사를 다른 사람에게 건넨 예도 있다. 언어학자 김진우는 ‘언어, 이론과 응용’의 초판(1985)에 “부모님께와 학생들에게”라는 헌사를 붙였지만, ‘깁더본’(개정증보판, 2003)에서는 “낭낭공주에게”로 헌사를 바꿨다. ‘낭낭공주’는, 개정증보판 서문에 따르면, 저자의 아내를 가리킨다. 부모와 더불어 아내는, 헌사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아내에게’ 따위로 존재를 흐릿하게 드러내는 것이 예사지만, 좀더 ‘개명된’ 저자들은 아내 이름을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존중과 사랑을 동시에 표현한다. 문학비평가 김병익은 칠순을 두 해 앞두고 낸 평론집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2005)에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아픔을 채뜨려 자신의 것으로 삼아, 대신 앓는 지영에게”라는 헌사를 붙였다. ‘지영’은 이 원로 비평가의 동갑내기 부인 이름이다.
생텍쥐페리가 쓴 길고 아름다운 헌사의 예가 있긴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건네는 현대의 헌사들은 대개 한 줄에 담긴다. 동갑내기 비평가 권성우와 이광호는 꽉 찬 서른 살이 되던 1993년에 각각 자신들의 첫 평론집을 냈다. 권성우의 ‘비평의 매혹’과 이광호의 ‘위반의 시학’은 둘 다 저자의 부모님께 헌정됐다. 권성우는 “문학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으셨지만, 누구보다도 문학적 삶을 살아오셨던 부모님께”라고 썼고, 이광호는 간결하게 “아버님, 어머님께 바칩니다”라고 썼다. 권성우의 헌사가 조금 길긴 하지만, 그래봐야 한 문장이다.
그러나 인쇄술이 보편화의 시동을 걸 무렵부터 시민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까지, 책의 헌사들은 몇 페이지에 걸칠 정도로 길고 그 문체도 장식적인 것이 예사였다. 저자로 하여금 익명의 다수 독자들을 대상으로 책을 쓰게 만든 자본주의적 서적 시장이 뿌리내리기 전에는, 저자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주로 귀족 출신 후원자(파트롱)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대 저자들은 오직 한 사람의 호의에 기대어 책을 썼고, 실제의 또는 잠재적 파트롱에게 바치는 헌사는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기가 노골적 아첨과 다름없었다. 마키아벨리(1469~1527)가 ‘군주론’(1532)에 부친 헌사(상자기사)는 그 때 기준으로 전혀 호들갑이 아니었다.
헌사는 인쇄 형태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들은 친지나 서평 기자들에게 책을 보낼 때 ‘아무개에게’라는 말을 쓴 뒤 서명을 하는 것이 예사다. 이런 친필 헌사를 저자 자신과 친분이 없는 다수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건네는 일도 있다. 그 전형적인 것이 이른바 ‘저자 사인회’에서 책을 사는 사람에게 쓰는 헌사다. 저자 사인회는 오늘날 신간 서적의 홍보와 판매 촉진에 만만찮은 구실을 하는 이벤트다. 대개 서점에서 이뤄지는 저자 사인회는 근자에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으로까지 공간을 넓히고 있다. 꼭 저자 사인회에서가 아니더라도, 저자의 서명은 대체로 책의 교환가치를 높이고 저자와 독자 사이의 유대를 굳건히 하는 데 이바지한다. 이른바 전문체(電文體: telegraphic style. 낱말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문장의 파편들만을 남기는 건조체) 문장으로 범죄소설의 새 경지를 개척한 미국 작가 제임스 엘로이는 자서전 ‘내 어두운 장소들’(1996)의 1쇄 65,000부 전체에 저자 서명을 한 바 있다.
■ '군주론' 헌사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위대한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군주의 은혜를 얻으려는 자는 보통 제가 가장 값지게 여기는 물건이나 군주를 가장 기쁘게 할 물건을 바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군주에게는 말이나 무기, 황금옷, 보석 같은, 군주의 위대함에 걸맞은 장신구가 헌정됩니다. 이제 저 자신 전하께 제 충성심의 증거를 바치고자 하옵는데, 제가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근래 사건들에 대한 오랜 경험과 고대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얻은, 위대한 사람들의 행적에 대한 지식입니다.
(중략)
비록 전하께 올리기엔 이 책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나,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주시옵소서.
(중략)
저처럼 신분이 낮은 자가 군주들의 행위를 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주제넘은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바라나이다. 왜냐하면 풍경화가가 산과 고지의 형상을 관찰하려면 낮은 평지에 있어야 하고 낮은 곳의 특성을 연구하려면 고지로 높이 올라가야 하듯, 인민의 특성을 잘 알기 위해서는 군주가 돼야 하고 군주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민에 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하께서는 제가 이 보잘것없는 선물을 올리는 바로 그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주시옵소서. 이 책을 읽으시고 숙고하신다면, 운명과 탁월한 자질이 약속하는 위대함에 전하께서 도달하시기를 우러러 바라는 제 마음을 간취하시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그 혜안을 저 드높은 곳에서 이 낮은 곳으로 옮기신다면, 제가 잔혹한 운명에 얼마나 심하고 오래도록, 또 얼마나 부당하게 시달려왔는지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객원논설위원 고종석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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