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미래를 향한 통합이었다. 안으로 용서와 화해로 분열과 대결의 역사가 만든 상처를 치유해, 하나로 뭉친 우리가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과 긴장을 평화와 공존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긴장이 여전한 분단상황, 일본 우경화를 비롯한 동북아 대결조짐, 관용과 상대주의를 배제한 국민분열을 극복해야 할 3대 과제로 제시하며 통합을 강조했다.
일본 등 동북아 문제
노 대통령은 이날 동북아 안정을 위협하는 패권주의를 경고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또다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일본총리를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죄는커녕 침략역사를 정당화하려는 그에 대한 강한 유감이 담겨있다.
노 대통령은 지역평화와 협력질서를 위협하는 패권주의를 경계하는 말로 일본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 동북아의 평화를 깨뜨린 것은 열강들의 패권주의인데 불행하게도 지금 동북아에 과거의 불안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다”며 “일본의 헌법개정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차 대전이 끝난 지 오랜 세월이 흘러 평화헌법 개정 자체를 가지고 시비를 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분명한 조건을 달았다.“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여러 차례의 사과를 뒷받침하는 실천으로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3ㆍ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해 ‘과거침략과 지배의 역사’에 대해 ‘사과에 합당한 실천’을 촉구한 것과 동일한 흐름이다.
노 대통령은 “독도,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질적 조치가 그것”이라며 “독일이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을 인정한 일과 최근 프랑스, 폴란드 등과 협의해 공동으로 역사교과서를 발간한 사례는 좋은 본보기”라고 구체적 예까지 들었다.
지난해 초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시네마 현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선포,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일련의 사태로 한일관계가 악화된 이래 취한 대일강경입장의 재확인이다.
대북관계
노 대통령은 대북포용정책의 기조를 재차 확인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해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고 미사일 발사로 새 국면이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분단상황의 지혜로운 관리’라고 했다.
노 대통령이 인권문제 등을 앞세운 대북강경론에 반대하면서 “확실한 억지력을 가지고 철저히 대비하는 동시에, 관용과 인내로써 북한을 설득하고 개혁ㆍ개방의 길로 끌고 가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각론으로 개성공단을 비롯한 경제협력 사업을 남북 평화와 번영의 튼튼한 다리로 삼아야 한다며 지속의지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 설득에도 주력했다. “지난날 북한이 저지른 전쟁과 납치 등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북한에 대해 관용과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결코 쉽지않을 것”이라면서도 “이제 우리 후손을 위해 지난 날을 용서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과 주변국의 변화도 주문했다. 북한에는 조건 없는 6자 회담 복귀를, 미국 등 회담 당사국에는 회담의 재개를 위한 다양한 형태의 대화시도를 요구했다.
작전권 환수와 한미FTA
노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주권회복에 연결시켰다. 나아가 “국군통수권에 관한 헌법정신에도 맞지않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도 했다. 작전권 환수가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킨다”는 자주국방의 출발점이라는 강조였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년 동안 준비하고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체계적으로 추진해온 일”이라며 반대파의 주장도 반박했다. 한미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 역시 “확고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고, 미국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개방을 우리의 생존전략으로 제시하며 한미FTA를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했다. 한미FTA를 통해 제조업과 첨단기술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서비스 산업을 키워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자고 했다.
그는 “그 동안은 일본의 성장모델을 쫓아왔지만 이제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일본을 넘어설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지난 9일 새 성장모델로 제조업에선 일본을, 서비스 산업에선 싱가포르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그 시작은 한미 FTA라고 했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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