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찾는 합리적 소비를 추구한다는 가정은 경제학을 떠받치는 기본 전제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감소한다는 것이 유명한 마샬의 수요법칙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비쌀수록 도리어 수요가 늘어나는 비합리적 소비행태가 버젓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 베블렌은 이를 사치적 소비를 통해 신분을 과시하려는 현상이라고 설명, ‘베블렌 효과’라는 용어를 낳았다. 비싸고 쓸모도 적은 은제품이 상류층의 식기로 널리 쓰이는 유일한 이유는 과시적 소비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 싸구려 중국시계를 스위스 명품이라고 속여 수 천만원씩 받고 판 명품시계 사건은 베블렌 효과를 극적으로 활용한 사기 수법이다. 최근에는 180년 전통의 이탈리아 명품이라던 시계 역시 가짜라는 보도가 있어 경찰이 가짜 명품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섰다.
문제의 가짜 명품업체는 강남 한복판에 초호화 매장을 내고 유명 연예인을 개점행사에 대거 동원했는가 하면 유명 인사들에게 시계를 선물로 뿌리는 판촉전략을 썼다. 명품을 찾는 소비심리에는 천박한 과시욕과 함께 명품을 쓰는 계층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점을 간파한 상술이다.
▦ 허황된 명품소비 심리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가 명품이란 말의 남용이다. 요즘 명품으로 통하는 제품들은 실은 사치품이 더 적합한 표현이다. 과거 박정희 정권 시대만 해도 이들 제품은 사치품이라고 불렸다.
영어로도 ‘값 비싸고 호화스럽다’는 의미의 럭셔리(Luxury) 제품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사치품이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살아 있는 작품을 의미하는 명품으로 슬며시 간판이 바뀌었다. 사치라는 단어의 거부감을 없애고 예술작품이라도 소장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말장난이 절묘하다.
▦ 과시적 소비는 베블렌이 19세기말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벼락부자들의 타락적 소비행태를 질타하면서 쓴 용어다. 당대에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전통적 부자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돈을 물 쓰듯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소비행태의 이면에도 갑작스레 부를 얻은 졸부들의 과시욕이 있다고 생각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구두 굽이 닳는 것을 막기 위해 징을 박아가며 30년 동안 같은 구두를 사용한 것이 사후에 밝혀져 새삼 감동을 주었다. 진정한 부자의 소비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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