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다국적 기업 GE는 주요 경영전략 중 하나로 ‘1위 혹은 2위가 아닌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 없는 원칙이 없듯 GE가 업계에서 3위 이하인 기업과 손을 잡은 적이 있다. 바로 현대ㆍ기아자동차그룹 계열의 현대카드다. GE소비자금융은 2005년 9월 현대카드에 6,783억원을 투자, 이 회사의 대주주가 됐다.
GE가 투자원칙을 바꿔가면서 한국 카드업계 4위권 밖 회사에 투자한 이유는 뭘까. 소비자들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생활 공간’으로 바뀌면서, ‘판매 후 시장’이 체계적으로 틀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보험 및 할부금융, 자동차 정비, 주유, 액세서리, 중고차 거래를 망라하는 ‘판매 후 시장’의 비중은 신차 시장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신차 시장 규모가 20조원 안팎이라는 걸 감안하면 ‘판매 후 시장’ 규모는 100조원에 이른다.
물론 ‘판매 후 시장’은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유통망이 복잡하고 방대해 완성차 업체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정보기술(IT) 혁명으로 개별 운전자들에게 대한 체계적 관리가 가능해지면서 토요타와 GM, 포드, 벤츠, BMW가 속속 ‘판매 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신차를 구입한 고객에게 멤버십 카드를 발급하고 있는 토요타는 ‘자동차 제작업체’ 대신 ‘종합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자’임을 내세우고 있다. GM과 포드도 제조업체가 아닌 서비스 업체로 기업 전략을 바꿔가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도 ‘팔고 나면 끝’이라는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 ‘판매 후 시장’에 대한 공략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기획총괄본부 산하 ‘CL(Car & Life) 사업부’를 중심으로 ‘판매 후 시장’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GM대우와 르노삼성도 본사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ㆍ기아차는 이르면 연내 고객관리 프로그램을 구축, 멤버십 카드 발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카드 발급은 GE와 제휴한 현대카드가 대행하게 된다. CL사업부 산하 고객관리프로그램팀의 조용준 팀장은 “신차를 인도받는 고객을 대상으로 멤버십 카드 발급을 시작할 예정이며, 기존 고객은 인터넷을 통해 회원 등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현대ㆍ기아차 이외의 차를 모는 사람은 가입할 수 없다.
현대차의 관리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고객 서비스의 질이 대폭 높아진다. 조 팀장은 “무상보증 기간과 상관없이, 회원 차량에 대해서는 매년 연 1회 무상 정기점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대신 현대차는 멤버십 카드를 통해 수집한 주유, 차량정비 및 신용카드 사용 성향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된다.
현대ㆍ기아차는 CL사업부가 구축한 프로그램과 현대모비스의 글로벌 물류망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외국의 ‘판매 후 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수출물류센터 김근배 부장은 “해외에서 운행되는 현대ㆍ기아차가 1,000만대로 추정된다”며 “인공위성까지 동원한 글로벌 물류시스템을 구축, 해외 고객이 요구한 부품을 즉시 내어주는 비율인 서비스 응답률을 토요타와 맞먹는 95% 수준까지 올려놨다”고 말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도 “외국은 현지 딜러들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어 여의치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판매 후 시장’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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