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와 재즈가 한 몸이 되듯, 나는 발칸 땅의 음악과 재즈를 결합시키죠. 재즈는 미국 음악의 복제(copy)가 아니니까요.”
역전의 노장 두스코 고이코비치(74)의 재즈론은 날이 서 있었지만, 신보 ‘Samba Do Mar(바다의 삼바)’ 만큼이나 부드럽게 듣는 이를 설득시켰다.
11~13일 그와 그의 5중주단 ‘서밋(Summit)’이 출연해 열릴 예정이었던 재즈 콘서트 ‘서머 재즈 새니테리엄’이 저조한 예매 성적으로 취소됐다. 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던 미국 재즈 그룹 포 플레이의 콘서트에 암표상까지 꼬여든 상황과 비교한다면, 재즈사의 산 증인을 당혹케 한 그 사건은 이 곳의 웃자란 재즈 소비 상황을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그는 고국 유고슬라비아에서는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거물이다. 재즈 교과서에는 세계 재즈계의 대표적 트럼펫 주자로 기술돼 있다.
“내 고향 베오그라드에서 어릴 적부터 재즈를 듣고 컸어요. 공산 정권이었지만, 재즈에는 내 생각대로 연주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죠.” 현재 국적은 독일이다. 서밋은 1967년 뮌헨에서 결성했다.
그가 세계의 치열한 재즈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는 것은 정통 재즈(하드 밥)의 어법을 통달한 덕분만은 아니다. 미국 재즈와는 다른, 자신만의 개성 때문이다.
“지금껏 엔자(Enja) 레이블을 중심으로 발표한 160여 장의 재즈 음반에는 라틴이나 불가리아 음악 등 민족 음악(ethno music)의 색채가 짙죠. 내 음악에는 발칸 땅의 기본 정서가 녹아 있어요.”
1958년 미국의 뉴포트 국제 청년 오케스트라에 참가하면서 일약 두각을 나타낸 그는 이후 케니 클락, 디지 길레스피, 프레디 하버드, 마일스 데이비스 등 재즈의 역사적 거물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10년 넘게 함께 활동한 케니 클락이 죽었을 때, 가장 슬펐죠.”
최근 수 년 간은 히노 데루마사 등 일본의 재즈 뮤지션들과 자주 활동한 덕에 일본에서도 명성이 높다.
그에게 재즈는 탈중심ㆍ공존의 예술이다. 곧 발표할 새 앨범 ‘Samba Czigano(집시의 삼바)’는 고향의 음악과 브라질의 리듬을 융합한 작품을 수록했다. 그런 그에게 미국 중심의 세계화 논리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나쁘죠. 각국의 고유 문화를 망치잖습니까?”
애초 그는 “재즈맨들은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모두 괴짜”라며 “인터뷰 대신 연주로 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1시간 여의 인터뷰가 진행되던 도중,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며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웠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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