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이 태풍처럼 인기몰이를 하면서 괴물의 정체에 대한 해석도 분분해지고 있다. 괴물의 즉물적 실체야 알다시피 한강 둔치에 출몰해 매점을 운영하던 박강두 가족을 습격한 그 흉물이다.
하지만 연꽃 잎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입을 가진 이 돌연변이 생물을 두고 한강에 포르말린이란 독극물을 방류했던 주한미군의 미국을 상징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얼마전 동해로 미사일을 발사해 애간장을 졸이게 만들었던 북한이란 분석도 있다.
진보와 보수진영이 선명성 경쟁이라도 하듯 저마다의 이유를 내세워 미국과 북한의 행태를 비난하고 있는 터라 이 두 가지 해석이 인기다.
그러나 기자는 생각이 다르다. 영화 속 괴물은 서민의 아픔을 오롯이 받아내지 못하는, 꽉 막힌 기성 제도권, 특히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정당하고 합리적인 요구조차 태연하게 묵살하는 정부가 아닌가 싶다.
영화 괴물에서 박씨 가족들은 괴물에게 잡혀간 중학생 딸 현서를 구출하기 위해 맨손으로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정부가 괴물에게 잡혀갔지만 아직 살아있는 딸을 구해달라는 박씨 가족의 절규를 외면하고, 오히려 괴(怪)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며 가족들을 잡아들이려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괴물이란 착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말로 유명한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를 괴물에 비유했다.
권력조직인 리바이어던(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을 만들어 태생적인 투쟁꾼인 인간을 법으로 통치해 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악설로 널리 알려진 중국 고대철학자 순자가 예(禮)로써 백성의 악한 천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갈파해 후일 전제왕조와 법가의 이론적 초석이 된 대목과도 일맥상통한다.
기자가 정작 걱정하는 무대는 스크린이 아니다. 현실이다. 우리 정부가 괴물스러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포항지역 상인들이 10일 두 달여 동안 이어진 포항건설노조의 시위가 계속될 경우 집단철시를 하고 반대집회까지 열기로 했다고 한다.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시내가 아수라장이 되는 바람에 상권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연세대는 13일 정문을 제외한 모든 출입문을 폐쇄하고 건물 출입문도 걸어 잠그는 괴상한 작업을 했다. 8·15 대학생 축전과 관련해 시설물 보호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학내 집회는 집시법이 적용되지 않는 다며 이를 거부하자 자체방어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제구실을 못하자 상인과 학교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영화 속 박씨 가족처럼 자구책을 마련하고 나선 셈이다.
정치ㆍ경제 분야에서도 괴물 증후군을 여기저기서 포착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안희정씨 등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을 대거 사면ㆍ복권했다. 대통령에게 사면권이 있다지만 비리에 연루된 측근을 재임 기간에 풀어주는 것은 상식과 민심에 크게 어긋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일보가 얼마전 보도했듯이 한ㆍ미 FTA 체결에 앞서 한국 지방정부의 조례가 FTA와 상충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 같은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역정을 낸다. 비정상이 마치 정상처럼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일제라는 괴물에서 벗어난 날이다. 61년전 그날처럼 무더위를 확 날려버릴 시원한 소식을 기대해 본다.
김경철 경제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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