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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파생시장 실태/ "파생거래? 외국투자은행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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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파생시장 실태/ "파생거래? 외국투자은행 가보세요"

입력
2006.08.1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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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를 수입하는 A기업은 지난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곤욕을 치른 뒤 가격 변동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는 상품파생 거래를 알게 돼 국내 은행을 찾았다. 국제가격 변동에 상관없이 매 분기마다 현 가격대로 수입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지만, 은행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외국 투자은행을 찾아가보라”는 것이었다.

첨단 금융 시장으로 불리는 장외 파생시장을 두고 외국계의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국내 금융권은 무장해제 수준을 벗지 못해 ‘금융 종속’마저 우려되고 있다.

환율 금리 원자재 등의 가격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형성된 장외 파생시장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리스크 관리 외에도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무궁무진한 상품과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 금융권의 ‘엘로라도’라 불리는 황금 시장. 그러나 국내 장외파생 시장은 일반 투자자를 대상의 시장 창출은 커녕 국내 기업인에 대한 리스크 관리 업무 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원유, 곡물 등을 국제가격 변동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상품 파생의 경우 그 어느 때보다 국내 기업에 절실하지만, 산업은행 정도 외에는 능력을 갖춘 곳이 없는 상태다. 정유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은행은 규모도 작고 정보력도 부족해 정유업체 모두 외국 투자은행에 맡기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체들은 국제 투자은행들이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거래를 거부하고 국내 은행들은 이를 손 놓고 있다 보니 가격 변동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그나마 환율과 금리 관련 파생업무는 활발한 편이지만, 대부분 단순 거래인데다 국내 은행간 경쟁도 심해 수익성도 높지 않다.

파생거래 자체를 투자대상으로 삼아 일반 투자자를 위해 만든 2차 파생상품시장은 더욱 열악하다. 복잡한 상품 설계는 말할 것도 없고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예금(ELD) 등 비교적 간단한 상품들도 대부분 외국 은행들이 설계ㆍ운용하고 국내 증권사들이 판매한다. 70년대 대부분 수출기업이 그랬듯이 수익률도 형편없고 자생력도 없는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결국 전문 인력과 국제적 인프라 부족 때문. 금융연구원 구정한 연구원은 “고객의 각종 리스크를 떠 안는 대신 다양한 거래기법으로 이를 분산시켜야 해 고도의 금융공학 전문가와 함께 국제적 네트워크가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준비가 거의 없었다”며 “금융권이 리스크 부담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수수료 수익 정도에 만족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외국계 대형 금융자본의 국내 시장에 대한 직접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장외파생업 영업 인가를 받았던 리만브라더스, CS 증권, 메릴린치 등의 국내지점이 올 1분기 거둔 파생관련 수익이 756억원. 국내 증권사 전체가 거둔 파생 관련 수익(867억원)에 육박하는 수치다. 맥쿼리, 시티그룹 등도 장외파생업 인가를 추진중이며 일부는 지점수를 늘리거나 현지법인화도 추진해 일반 영업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금융리스크관리전문가협회 전정용 사무국장은 “자본시장 통합법, FTA 등으로 파생 시장 규제가 대폭 풀리고 추가 시장 개방이 이뤄질 것에 대비해 외국계 대형 금융자본이 더욱 밀려들 전망이다”며 “패션디자이너 없이 외국 업체를 모방해 상품만 내다 팔다보면 패션산업이 망하듯이 국내 금융업도 외국 상품 베끼기에 급급하다 보면 결국 망하는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자본시장통합법 도입되면

날씨, 재해에서 평균수명, 전력 생산량, 농업인구까지.

정부가 추진중인 자본시장통합법이 도입되면 파생금융상품의 종류는 거의 ‘무한대로’ 늘어날 여건이 마련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변수가 금융상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통법은 금융투자상품의 범위를 열거식에서 포괄식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이런 상품만 된다’는 현행법이 앞으로는 ‘이런 이런 것만 빼고 다 된다’로 바뀌는 것이니 만들 능력만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증권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선진국에서 거래되는 상품을 기반으로 앞으로 우리나라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전망했다. 기초자산의 변동에 따라 이익을 얻거나 손해를 피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상품이 예시됐다.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은 전력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을 구입해 미래에 전력사용량이나 가격이 급변할 경우 입을 수 있는 손해를 예방할 수 있다. 태풍이나 지진 등 재해가 발생하면 손실이 클 수 밖에 없는 보험회사들은 재해관련 파생상품을 사둘 수 있다. 폭염이나 폭설 등 이상기후도 마찬가지. 외국에서는 이미 월간 결빙일수를 매개로 한 상품도 거래되고 있다.

갈수록 규제가 심해지는 이산화탄소 등 각종 오염물질 배출권을 기초자산으로 해 기업들은 파생상품을 통해 서로 여유분을 사고 팔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 같은 거시경제 지표도 기초자산이 된다. 물가상승률이나 실업률 같은 전반적 지표뿐 아니라 비농업종사자 수 같은 지엽적인 통계도 상품화가 가능하다. 오래 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손실 위험이 큰 금융기관은 평균수명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을 살 수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걱정인 사람은 부동산 가격변화를 매개로 한 파생상품을 구입하면 되고 이동통신사의 경우 규제완화 조치로 갖고 있던 통신채널이나 회선이 줄어들 때를 대비해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을 사 손해를 줄일 수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 파생상품 개발 기술자인 '퀀트' 국내 사실상 '0'

‘팔 수 있는 상품 가지 수는 무한대로 늘어나는데 정작 상품을 만들 기술자가 없다’.

현재 파생상품과 관련해 우리나라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처한 현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심각성을 느낀 각 금융사들이 뒤늦게 기술자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현실은 개탄스럽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자는 흔히 퀀트(Quant)로 불린다. ‘계량적인’이란 뜻의 영어단어 ‘quantitative’에서 나왔다. 수학, 물리학, 통계학, 금융공학 등을 두루 섭렵해 각종 파생상품 설계는 물론 리스크 헤지 프로그램까지 개발할 수 있는 금융분석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퀀트를 보유한 외국 금융기관과 달리 국내에는 전 금융기관을 통틀어도 퀀트는 손에 꼽을 정도. ‘엄밀히 따지면 우리나라 금융사에는 퀀트가 1명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나와있는 상품 구조를 조합하거나 변형해 새 상품을 만드는 넓은 의미의 퀀트는 10여명 수준이고 시뮬레이션과 통계적 분석방법을 동원해 기존에 없던 공식을 적용해 그야말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는 퀀트는 몇 명 뿐이다. 그나마 이들 역시 ‘만드는 작업 중’이고 아직 시장에 내놓은 상품은 없는 상태다.

은행의 경우,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여수신 업무나 1건만 성사시켜도 대박이 나는 인수합병(M&A) 등에만 치중하며 파생상품 판매나 개발에는 소홀했던 게 사실. 수요가 없으니 당연히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그나마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고급인력도 대부분 대우가 좋은 외국계 은행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퀀트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소양을 닦을 수 있는 곳은 카이스트의 금융수학 과정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서 석ㆍ박사를 마쳐도 다시 금융사에서 오랜기간 실무를 배워야할 정도로 산ㆍ학간 교류도 부족하다.

산업은행 윤재근 금융옵션팀장은 “하루빨리 파생상품 시장을 키우고 국내 금융사들도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경쟁력 있는 퀀트를 육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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