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편물에 '상하수도요금 자동납부 청구서'가 끼어 있다. 내 소관이 아니어서 집주인 우편함에 옮기려다 멈칫했다. 10년 전에 이사 간 사람의 이름이 수취인 난에 찍혀 있었다. 어째서 이 집 수도요금이 이 이름으로 청구되는 걸까?
그 사람과 그의 아내의 옛 얼굴이 선연히 떠오른다. 나는 후배 세입자로 그들 위층에 살게 됐다. 내 방에 가려면 그들 현관 앞을 지나야 했기에 종종 마주쳤다. 막 문을 열고 나오려던 그 젊은 부인은 도로 들어가고 싶은 것을 억제하는 듯 곤혹스런 눈빛으로 미소를 띤 채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아무 말 없이. 수줍음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가 한국어에 서툰 일본 사람이어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 집 아들 이름이 뭐였더라? 그녀는 아이 엄마로는 안 보일 만큼 어린 모습이었고, 귀티가 나는 미인이었다. 선한 인상의 그 남편은 회사원인 듯했다.
그들에게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났을 즈음 그 가족은 이사를 갔다. 어려운 일이 생겨서 집을 줄여 간다고 했다. 남자는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며 꼭 연락하라고, 자기 아내의 언니 같은 친구가 돼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겠노라 진심으로 약속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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