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용관’을 내건 극장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한국 연극이 다양성과 상업적 자생력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겠다. 극단마다 지향하는 연극이 다르고, 관객과 만나는 방식이 다른 만큼 ‘1극단 1극장’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이 이상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 속내를 살펴보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극단별 전용관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극단마다 그만한 ‘충성도’를 갖춘 관객을 거느려야 하고 극단은 기량과 질을 갖춘 고정 레퍼토리를 여러 개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이 우리 삶 깊숙이 하나의 문화 살림으로 자리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최근 전용관이 늘어나는 것은 기획사의 독점 측면이 강하지만 뮤지컬이나 개그 등 상업 연극의 장르별 특화 말고도 어린이 연극 전용관, 인형극 전용관, 창작극 전용관 등으로 다양성의 외연이 넓어지는 중이다. 이 가운데 중장년층 관객을 위한 연극을 꾸준히 올리는 극장으로 발렌타인 극장(3관)을 주목할 수 있겠다.
극단 ‘미연’의 전용관이 된 이 극장에서는 대표이자 연출가인 김순영의 ‘감동, 재미, 대중성’ 삼박자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담은 레퍼토리 선정이 눈에 띈다. 연극 창조의 뒷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역설한 ‘삼류 배우’ 이후 이 극단이 택한 작품은 ‘사랑을 주세요’이다. 이 연극은 미국 유명 작가 닐 사이먼의 이력상 최정점에 위치한 작품으로 퓰리처상 수상작이면서 1991년 브로드웨이 흥행작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뉴욕 외곽에 살고 있는 한 유대인 가족을 두 소년의 순진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는 이 연극은 경제 공황, 전쟁, 유대인 박해 등 전 생애 동안 삼중의 도전으로부터 가족을 지켜 온 강철 여인 할머니와 가족 구성원 간의 왜곡된 사랑과 상처를 다루고 있다. 좋은 작품이 그렇듯 가족의 의미 외에도 장애인의 성과 사랑, 타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과정 등 부주제들을 겹겹이 거느리고 있다.
무엇보다 소년들의 순진함과 무지를 이용해 끌어나가는 상황의 희극성이 돋보이고, 인물의 생생한 성격 구축이 관객을 즐겁게 한다. 유대인 가정이라는 특수한 배경을 흘려보낼 만큼 연극은 보편적 감동과 웃음에 기대긴 하지만, 동시에 이 즈음의 극장 밖 현실을 자주 환기시킨다. ‘절대 울지 말고, 살아 남으라’는 주술에 가까운 할머니의 외침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레바논 사람들의 눈물을 솟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만 사실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10월 1일까지. 대학로 발렌타인극장 3관.
극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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