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조기 이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의 사정을 고려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군의 필요에 의한 것임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전시 작전권 이양을 둘러싼 양국간 협상은 한국의 요청으로 촉발됐지만 기왕에 이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한 이상 이를 가급적 빨리 매듭짓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미군의 전세계적 운용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8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전시 작전권의 한국 조기 이양이 세계적인 미군의 재배치와 직ㆍ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나 전시 작전권 이양 문제는 이미 동북아시아, 나아가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미국 군사전략의 한 요소가 됐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일어날 변화의 과정을 조기에 안정시킴으로써 2012년까지 완료하기로 한 주일미군의 재배치 문제, 괌 기지의 전방 작전기지화 문제 등에서 보다 여유를 갖고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
전시 작전권 이양시기를 평택기지 완성 시점과 연계시키고 있는 것 또한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 전략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점에서 미국은 주한미군 규모를 2만5,000명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문제의 핵심은 주한미군의 철수가 아니라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에서의 작전 가능성에 모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이은 한미연합사의 해체로 주한미군의 운신 폭은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전력 증강 속도가 조기 작전권 이양을 가능토록 할 만큼 만족스럽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군의 부족한 부분은 미군이 계속해서 보완해 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이 그만큼 전시 작전권 조기 이양에 적극적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정보능력 등 최첨단 전력에 관한한 미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다 가지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단기적으로 한국이 이 같은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데 무기 구입에 관한 한 미국이 이를 마다할 이유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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