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지난해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동남부를 강타했을 때 우리측이 전달하고자 하는 구호품을 사양하는 미국 정부에 사정하다시피 받아달라고 요청했던 사실이 10일 드러나 외교적 논란을 빚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당국자는 주한 미국 대사관측에 미국이 구호품을 받지않을 경우 한국이 곤혹스럽게 되고 정부 고위급 인사의 체면이 손상된다는 등의 발언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외교부가 구조팀 파견과 구호품 수령 등을 요구하자 미 대사관은 ‘카트리나에 대한 한국 정부 조치의 정치적 배경’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까지 작성하며 우리 정부의 의도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주한 미국 대사관과 미 국무부가 주고 받은 전보 등 미주 한국일보 뉴욕지사가 이날 입수한 국무부 비밀 해제 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주한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해 9월9일 미 대사관 부대사 대행을 만나 “구호품 전달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면서 “미국 관리들이 구조팀 파견을 거부했는데 구호품 지원도 불발될 경우 이는 한국을 극도로 곤혹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고위급 관리들은 심하게 체면이 깎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미 부대사 대행은 “구호품 양을 줄여 휴스턴 한국 총영사관이나 피해 한인에게 보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자 외교부 당국자는 이를 거부하면서 미국측의 필요 물품 명시를 요구하는 한편 “구호품 전달이 취소될 경우 한국의 여러 명이 상당한 창피를 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9월7일에는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가 “외교부가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총리, 그외 고위관리들로부터 구호품 전세기 운행이 최종 승인되도록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지원을 약속했던 여러 국가들로부터 현금 지원을 받기를 원했다. 이에 따라 3,000만 달러를 약속했던 한국도 미국의 여러 채널을 통해 2,800여만 달러의 현금을 지원했다.
한국은 당초 구호품 100톤을 전달하려 했으나 미국측의 구호품 수량 축소 요구에 따라 같은 해 9월15일 전세기를 통해 방수포(117개), 기저귀(1,650박스), 청소용품(고무장갑 5,520켤레, 고무장화 1,344켤레, 쓰레기 봉투 63박스, 방진 마스크 330박스) 등 총 30톤의 구호품만 미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 해제 문서에는 한국 구호 물품의 규모가 방수포와 기저귀 10톤, 청소용품 5톤 등 총 15톤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구호품 전달을 위해 미측과 사전협의를 하는 과정에 필요하지 않다는 물품은 빼면서 30톤이 된 것이고 미측으로부터 수령 증명서까지 받았다”며 “구호품을 받아달라고 사정을 하거나 이와 관련해 고위층의 압력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미주한국일보 뉴욕지사=신용일기자 yishin@koreatimes.com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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