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지난달 24일 보도한 ‘가늘고 길게 살자’에 대해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철밥통’으로 묘사된 공무원들의 항의 공세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기사의 요지는 외환위기 이후 민간기업들이 앞 다퉈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갖추면서 젊은 직장인들이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뛰어난 공기업과 공직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임금수준은 제쳐 두고 노후 보장 등 긍정적 측면만 부각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인터넷에는 수천통의 댓글이 올라왔고, 기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온 공무원도 많았다. 그들의 주장을 담은 글과 말들이 평상심을 유지했다면, 공무원 입장에선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여겼을 것이다.
헌데 익명성의 가면 아래 숨을 수 있는 인터넷 댓글은 그렇다 쳐도, 이메일이나 전화로조차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해대니 감정적으로 도저히 수용이 안됐다.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기사’라거나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기자 놈’ 정도의 표현은 애교로 봐줄 수 있을 정도였다.
사회 트렌드를 보여주는 기사에도 이런 식의 반응이니, 가치관이 개입되는 주요 현안에 대해선 오죽 하겠는가. 실제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확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계층간 이해관계나 이념이 충돌하는 이슈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보자면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식이다.
한국 사회에 합리적인 토론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그 정도가 훨씬 심해진 느낌이다. 우리 사회 어디를 둘러봐도 건전한 비판과 견제는 사라지고 감정 섞인 비난과 증오만 가득하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은 오직 제거와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생뚱맞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영상문화가 득세하는 요즘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미국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인을 약 8,000번, 폭력은 10만번 정도 목격한다. 물론 실제 현장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따위의 영상물을 통해서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어린이도 어른도 현실을 현실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라마와 인터넷 동영상, 게임 등에 푹 빠져 지낸다. 독서인구는 줄어들어도 인터넷과 휴대폰 사용인구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인터넷 댓글과 휴대폰 문자에 중독돼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갈수록 퇴화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지길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데 여론 형성기능을 담당하는 언론기관까지 이런 풍토에 오염돼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방송의 언어오염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최근엔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을 둘러싸고 일부 신문사가 청와대와 막말 논쟁을 벌였다. 언론매체가 대중과의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쏟아낸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비판에는 잘 되라는 애정이 전제돼 있다. 그래도 쓴 소리인 탓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하물며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받게 되면 어떻겠는가? 악감정과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인간은 비난보다는 오히려 용서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용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언론마저 막말 대열에 가세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고재학 기획취재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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