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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산에 올라 바다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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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산에 올라 바다를 보다

입력
2006.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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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면 산에 오른다. 해발 626m. 산의 이름은 호구산이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20분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등산의 묘미를 알기에는 충분한 산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그 산의 이름만큼이나 녹녹하지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쯤에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두세 번은 든다.

●산 길은 마음의 길

정상까지 거의 경사진 오르막길. 마음이 급해지면 정상을 밟기가 쉽지가 않다. 마음에 서두름이 없고 조급함이 없어야 정상에 설 수가 있다.

저만큼 정상이 보인다고 마구 달려갔다가는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다. 산의 정상은 언제나 눈의 거리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호구산을 오르면서 나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힘이 들수록 마음을 차분히 하고 보폭을 조절한다. 힘이 드는데 빨리 올라가 버릴까 하다가도 그 마음을 접는다. 고되게 올라가면 그만큼 쉬이 지치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야 산은 정상의 길을 내준다. 산의 정상에 서서 나는 내가 버리고 온 마음과 챙겨 온 마음을 하나씩 돌아본다. 버렸던 마음은 조급한 마음이었고 나를 정상에 서게 한 마음은 느리고 욕심내지 않는 마음이었다. 정상이 목적이 아니라 꾸준히 걷는 데 마음을 두고 걸었기에 정상과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내 걸음에는 어쩌면 정상마저도 과정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과정이 되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아무런 집착 없이 살았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산길을 걸으며 나는 마음 길도 같이 걸어왔던 것이다. 그 길은 조용하고 온화하다.

산의 정상에 서서 산이 품고 있는 바다를 만난다. 산언덕을 오를 때에는 앞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바다. 그러나 정상에 서면 무슨 마술처럼 산은 바다를 펼쳐 내보인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바다는 산기슭에 잠복하고 있었던 것인가.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쪽빛의 남해 바다. 내 삶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바다의 곁을 지나왔던가.

그러나 이토록 고운 물색을 만나기는 드문 일이다. 저만큼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물색은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쪽빛으로 내 가슴에 흘러들어왔다. 내 가슴에도 쪽빛 물이 든다. 문득 그 고운 빛으로 세상을 살면 행복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눈을 감고 바람을 맞으며 내 가슴에 넘실대는 쪽빛 바다를 나는 마음껏 마신다.

●정상은 시작이다

높이의 정상에서 나는 넓은 바다를 본다. 정상은 언제나 넓음으로 나아가는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산 정상에 서서 나는 바다와 같이 넓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이것은 아름다운 생명의 충동이다. 그러나 누구나 오를 줄만 알았지 넓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상이 나 자신을 위한 삶이었다면 넓음은 그런 자신의 회향을 의미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나누는 삶. 그 삶이 바로 바다와 같이 넓은 삶이 아니겠는가.

정상은 언제나 시작이다. 넓음으로 나아가는 시작이고 내려가는 길의 처음이기도 하다. 산의 정상에서 바다를 보며 나는 시작의 의미를 배운다.

성전 남해 용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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