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며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했던 유태계 이탈리아인. 자신이 태어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홀에서 투신 자살했다.
토리노에서 태어난 레비는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가 최초의 인종차별법을 공포해서 유태인들은 공립 학교에 다니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재학생들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의 졸업증서에는 ‘유태인’이라고 기재되었다. 졸업 후 제약 공장에 다니던 그는 반파시스트 저항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진다.
독일의 패전 후 어렵게 복귀해서 도료 공장에 일자리를 구한 레비는 1946년 ‘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을 써서 이듬 해 출판한다. 1963년에도 수용소 체험 에세이집 ‘휴전’을 출판하고, 이어서 단편집 ‘자연스러운 이야기’(1967) ‘형식의 결함’(1971) ‘주기율표’(1975) ‘릴리트와 단편들’(1981), 시집 ‘브레마의 선술집’(1975) 및 노동자에 대한 민속지학적 이야기 책 ‘멍키 스패너’(1978), 에세이집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 등의 작품을 출간해서 이탈리아 안팎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는다. 아우슈비츠에서 나치가 그에게 문신했던 수인 번호 174517는 그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레비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공격적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면서 이에 ‘저항할 책임’을 주장했고, 또 디아스포라(이산)의 국제적 체험에 깃든 관용의 사상적 전통을 지켜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던 이스라엘 국방장관 샤론이 다시 권력에 복귀했을 때에도 애써 낙관적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려고 했던 레비가 끝내 자살을 하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쇼아’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동으로 소위 ‘역사가 논쟁’이 독일에서 터진 탓이다. 1986년 독일의 우파 역사가들은 학문의 외피를 쓴 채 독일 파시즘의 불가피성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40년에 걸친 자신의 증언에 대해 절망적으로 회의하게 되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계속 살아 남아서 글로 증언하고 했던 정신적 계기는 바로 ‘기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의미’이며 ‘인간은 불행한 경험 속에서도 살아가야 할 의무’와 ‘그 경험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 자신이 믿어 왔는데, 그렇게 ‘증인의 의무를 갖고 지옥에서 나왔지만’ 이제 우파 역사가들의 뻔뻔스러운 역사 왜곡 앞에서는 ‘증언자로서 자신의 자격에 대한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자살은 당시 유럽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재현(이하 현) 레비 선생님, 이스라엘의 광기가 너무 무섭습니다. 최근에는 민간인 마을을 폭격해서 수십 명을 학살했습니다. 여기에는 너덧 살 된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3주 넘게 계속된 무차별 공격으로 숨진 레바논 측 민간인 사망자가 7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난 7월말 현재 난민 숫자는 레바논에서만 68만 명이고 시리아, 요르단, 사이프러스 및 걸프 지역에도 22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프리모 레비(이하 레비) 살해된 민간인 다수는 피난민들이고 사망자 절반 가까이는 아이들이야. 공습으로 죽은 유엔 감시단원들은 이스라엘측이 고의적으로 정밀 폭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있는 시신을 포함하면 죽은 사람들 숫자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게야.
현 지금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거의 모든 곳을 아우슈비츠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홀로코스트(대학살) 범죄자라고 하면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 파시스트 도살자들을 가리켰지만, 이제는 레바논 침공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홀로코스트의 범죄자들로 전락해 버린 셈입니다. 전세계에서 지탄을 하고 고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민간인들을 대낮에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전쟁 범죄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란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과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요?
레비 니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괴물과 싸우다 보면 괴물이 되어버린다고 말이야.
현 이스라엘은 이번 침공의 발단이 헤즈볼라에 의한 이스라엘 병사 2명의 납치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레비 우선 ‘납치’란 말이 잘못 된 거야. ‘납치’란 말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의 표현인 거고. 헤즈볼라 입장에서는 1982년 창설된 이래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니까 이스라엘 병사들은 엄연히 전쟁 포로인 거지. 그리고 원래 이번 사건은 지난 6월 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민저항위원회(PRC)의 지도자 아부 삼하다나 등 4명을 살해하고, 가자 지구 북부 해안을 폭격해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7명이 潁좡構?30명 넘게 부상하게 된 사건이 발단이라네. 그 사건 이후 하마스는 2005년 2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사이에 성립된 휴전의 무효를 선포하고 이스라엘과 전투를 하기 시작한 걸세. 헤즈볼라 측의 공세는 이 전투의 연장인 거야.
현 헤즈볼라는 뭐고 하마스는 뭔가요?
레비 헤즈볼라는 ‘신의 당’이란 뜻을 가진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창설되었고, 1992년에 처음 의회에 진출해서 현재 전체 128석의 의회에서 14석을 차지한 합법 정당을 갖고 있기도 해. 물론 산하에는 무장 조직도 있고, 평소에 의료와 교육 등의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이란 뜻의 팔레스타인 수니파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인데 1987년의 제 1차 인디파타(봉기) 때 ‘무슬림 형제당’의 가자 지구 조직으로 출발했어. 2004년 3월에 하마스 지도자 야신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고, 올해 1월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해서 팔레스타인 의회의 다수당이 되었지. 하마스가 집권하자마자 미국은 팔레스타인 원조를 끊어 버렸지.
현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공통점을 가졌군요. ‘무슬림 형제당’은 1928년과 1929년 사이에 이집트에서 창설된 최초의 ‘정치적 이슬람주의’ 조직이고,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이란에서의 시아파 집권이지요. 그러니까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단지 이슬람 율법을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창설을 통해서 이슬람화를 정치적으로 성취하려는 이념을 갖고 있는 거네요. 그들의 무장 투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침탈과 지배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인 거고요.
레비 국민 국가마다 세부적인 사정은 다르지만 대체로 그런 거지. 그런데 문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우파 강경 집단이야. 1995년에는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1993년에 팔레스타인 측과 오슬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해서 이스라엘의 극우파에 의해 암살된 적이 있지. 또 올 3월에는 이스라엘 총선에서 카디마 당이 승리를 했는데 이 카디마 당은 강경 우파 정당인 리쿠드당 당수로서 총리가 된 샤론이 작년에 새롭게 출범시킨 정당이야.
현 샤론은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다음, 국방장관 시절이던 1982년 메나헴 베긴 당시 총리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난민촌을 공격해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적이 있지요?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로부터 ‘도살자’라고 불리기도 했구요.
레비 그런 샤론이 총리 취임 후에는 독자적인 제안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작년 9월에 38년 간 점령했던 가자 지구를 포기했다네. 그 제안이란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이전의 점령지는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고 그 대신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쪽에 돌려준다는 내용이지.
현 그런데 헤즈볼라나 하마스는 이 제안을 인정하지 않는 거네요. 제 1차 중동전쟁이 일어났던 1948년 이전을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이 제안은 애당초 말이 안 된다는 거지요?
레비 이러한 학살과 증오와 광기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판 없이 잠정적인 정치 협상 기술만으로는 절대로 참다운 평화가 만들어질 수가 없어. 게다가 아랍 내 일부 친미 권위주의 국가들의 집권층은 팔레스타인에 자치와 연대에 기초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속으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어. 대부분의 아랍 사람들이 현재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때문에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지.
현 그럼 이번 레바논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또 어떻게 힘을 보태야 하나요?
레비 나라고 해서 해답이 있는 건 아냐. 다만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26곡의 오딧세이 부분에서의 인용문을 들려주고 싶네. “너희들은 짐승 같은 야만적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도록 내게 힘을 주었던 구절이라네.
현 어쨌든 일단 즉각적으로 휴전이 이루어져서 레바논 사람들이 한숨을 돌렸으면 좋겠네요. 협상은 그 다음에 하면 되는 거니까요.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지요.
문화비평가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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