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나 가뭄에 의한 대기근은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와 농경을 시작했을 때부터 숙명처럼 벗어나기 어려웠다. 1847년 아일랜드에서는 주식인 감자에 잎마름병이 번져 대흉년이 들었다.
이 흉년은 수년 동안 계속돼 인구 800만명 중 150만이 굶어 죽었다. 당시 이웃 나라인 영국은 끝내 구호를 외면했다. 이런 몰인정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원한이 사무쳤는데, 1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앙금이 남아 있다고 한다.
▦ 농업기술과 교통, 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세기에도 인류는 대기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의 기근은 그 이전과는 양상이 달랐다. 이전의 기근이 기상재해로 인한 흉작 때문이었다면 20세기 들어서는 정치가 직접적 원인이 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20세기의 5대 기근으로는 1931~1933년 소련 우크라이나 대기근, 1958~1962년 중국 대기근, 1984~1985년 에티오피아 대기근, 1975년 캄보디아 대기근, 그리고 1994~1998년 북한의 대기근이 꼽힌다. 5개국 모두가 전체주의 국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소련과 중국, 북한에서는 농업집단화가 대량 아사의 주요인이었다.
▦ 스탈린은 집단농장(콜호즈)이 곡물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규모 농업집단화는 우크라이나 등 남부 곡창지대를 기근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에서 200만~500만 명이, 카자흐 지방에서 100만~2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1958년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대약진운동을 전개했다. 전 농촌을 소련의 콜호즈보다 국유화 수준이 높은 인민공사로 집단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 결과는 스탈린의 실패보다 훨씬 참혹했다. 이 시기에 굶어 죽은 중국인은 최대 3,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 북한의 대기근 때 아사자 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세계식량계획(WFP)은 100만 명 정도로 추산했으나 300만에서 350만 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 집계는 상당부분 부풀려졌다는 견해도 있다.
통일연구원의 이석 연구원은 북한의 공식인구 통계를 근거로 1994~2000년의 인구손실규모를 분석, 이 기간 아사자가 최소 58만 명에서 최대 69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 정도도 북한 인구규모로 볼 때 엄청난 숫자다. 북한이 협동농장 체제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가운데 또 대규모 수해를 당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모른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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