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6일 오찬 회동은 정점으로 치닫던 당청 갈등을 일정부분 봉합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더 이상의 대결은 파국이자 공멸이라는 양측의 상황 인식 때문이지, 이해관계 합치에 따른 갈등 해소로 보긴 어렵다. 이날 회동 결과를 미봉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차기 대선을 의식해야 하는 여당은 지지도가 낮은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고심할 수밖에 없어 민감한 현안을 놓고 다시 갈등의 골이 패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회동에서 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외형상 갈등 수습을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먼저 당이 한발 물러섰다. 김근태 의장은 “인사권을 존중해 달라”는 노 대통령의 요구에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문제에 대한 당의 부정적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이 공개된 것도 사과했다.
이에 노 대통령도 “중요한 인사문제에 대해서는 지도부와 상의할 의사가 있다. 시스템화 됐으면 좋겠다”며 당청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이를 통해 나온 것이 대통령 인사권 존중, 대통령의 당 건의 경청, 당정청 모임 구성 등 세가지 합의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당청간 긴장의 끈은 계속 팽팽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날 회동에서 노 대통령은 인사권을 가장 힘주어 강조했고, 여당 지도부는 원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나빠진 민심”을 언급했다.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김 의장), “주요한 인사에 대해 당은 의견을 전달하고 대통령은 조언을 참고해 결정하면 된다”(김한길 원내대표)는 발언은 노 대통령과 당의 착점이 다름을 드러내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철학대로 국정을 운영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겠다는 노 대통령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민심을 반영해야 하는 당 사이에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대통령 인사권 파동으로 양측의 감정적 골이 워낙 깊어져 복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따라서 당청간에는 이미 심리적 결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 당은 당대로 노 대통령에게서 벗어나 제 살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내달 개회되는 정기국회를 감안하면 이른 시일 내 파열음이 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대체적 전망이지만, ‘문재인 법무장관’카드가 현실화할 경우 시기가 의외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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