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고용의 평등과 안정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고용 창출을 통해 고용률이 높아져야 소득 불평등도 감소하고 복지제도가 유지될 수 있죠. 이것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셈입니다.”
정이환(49) 서울산업대 교양학부 교수가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을 바라보며 던지는 고언을 담아 ‘현대 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후마니타스 발행)을 펴냈다.
사회학자인 그가 노동시장을 연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노동시장에 대한 연구가 경제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한국사회를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997~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잇따른 도산과 그에 따른 고용 불안정 및 대량 실업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급부상했다. 이와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도 ‘지구화’(globalizationㆍ세계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고용과 고용의 불평등 문제가 세계 노동시장의 핵심 쟁점으로 등장했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소득 격차는 더욱 심화했습니다. 이 때부터 노동자들은 고용 안정을 지고의 가치로 삼게 됐고, 생계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로 신분을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역시 감원과 값싼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이라는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정 교수는 노사 양측의 이 같은 근시안적 대처로 인해 양극화와 같은 사회갈등이 발생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비정규직 양산 및 그로 인한 노동시장의 영향 등에 대한 연구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정부출연기관에서 발간된 논문들이었다. 정 교수는 세계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그로부터 한국에 적용할 만한 장점들을 도출해 보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정 교수의 생각은 두 가지다. 각국의 노동 체제가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특정 형태로 수렴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평등과 복지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 사회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매우 건강한 노동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일랜드 덴마크 네덜란드 등도 저마다 자국 실정에 맞게 잘 조정된 노동시장 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한국도 한국 실정에 맞는 노동시장 체제를 구상하고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정 교수는 노ㆍ사ㆍ정 모두에게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그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선 노조는 고용 평등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기존의 태도에서 벗어나 고용 창출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진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사용자 역시 이윤 추구에 있어 노조가 걸림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사용자들이 고용권을 쥐고 있는 한 고용 창출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 역시 그들 몫이라고 정 교수는 강조한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을 양산하기 보다는 정규직 파트타이머를 늘리는 것과 같은 형태로 ‘비정규직’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깨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노사간 임금 협상에 있어 사회적 합의를 이루도록 제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법정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그 적용대상 범위를 넓히며, 근로 조건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
정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정책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노동체제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현재의 한국 노동시장에 대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론을 이끌어낸 점은 대안 마련을 위해 느리지만 무게 있는 발걸음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진 류효진 기자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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