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밤을 잠 못 이루고 뒤척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괴로움을 잘 알 것이다. 양을 백마리까지 세어보아도 졸음이 오기는커녕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해질 때는 세상 근심을 모두 내가 이고 있는 듯 하고,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 버려진 듯 외롭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이런 불면의 밤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불안과 초조가 심해져 결국 마음의 병이 되어 버린다. 두통이나 집중력 장애와 같은 신체 증상이 유발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때문에 수면제는 불면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치료제다.
하지만 수면제는 중독성이 강하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약이라는 인식도 있다. 20세기를 풍미했던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 라이터 장덕 등 유명인들이 만성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다 결국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수면제란 건강의 적으로 절대 금기해야 하는 것인가, 적절하게 이용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수면제에는 잠이 쉽사리 들지 않는 사람에게 유용한 수면유도기능, 잠이 들어도 선잠을 자고 제대로 못자는 사람들을 위한 수면지속기능이 있다. 지속시간도 1~2시간용, 12시간 이상용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다. 만일 전날 밤 수면제를 복용한 후 다음 날 낮까지 멍하고 불쾌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복용시간이 긴 수면제를 썼다는 증거다. 현재 수면제는 건강식품처럼 팔리는 것도 있고, 누구나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 의사가 처방을 해야 하는 전문의약품 등 다양하다.
그럼 수면제는 언제 써야 할까. 건강한 사람들도 시험이나 인터뷰,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 밤잠을 설칠 수 있다. 가족의 사망이나 실연, 사업상 큰 손실을 입는 등 스트레스의 강도가 클 경우 생기는 일시적 불면증도 있다. 특히 이럴 때는 수면제를 먹지 않고 방치하다가 오히려 병을 키워 만성불면증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불면증세가 나타난다면 수면전문의와 상의한 후 단기적으로 안전한 수면제를 적당량 복용하는 게 좋다.
그러나 수면제 복용이 장기간 지속되고 수면제의 복용이 습관화되어 수면제 없이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문제가 된다. 수면제를 무분별하게 복용하면 습관성이 생겨 피부질환이나 위장질환, 호흡장애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의 위험인자가 되는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경우 수면제로 인해 무호흡증이 악화될 수 있다.
또 불면증이 있는 경우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는 경우가 흔한데 술과 수면제를 같이 복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수면제를 복용하면 수면 중 호흡마비가 발생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임산부도 수면제 사용을 피해야 한다.
만성불면증의 경우에는 좋은 수면습관을 기르는 행동요법이나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이완요법을 병행하면서 수면제의 용량을 줄이면 결국 수면제 복용을 중단할 수 있다. 불면증이 수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수면다원 검사를 통해 불면의 다른 원인이 없는지 동반된 수면장애가 없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보통 잠을 잘 드나 깊이 못자고 종종 깨는 경우는 다른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경우에도 혼자 잠과 투쟁하지 말고 수면 전문의에게 도움을 청하라. 적절한 수면은 지친 심신을 회복시키고 건강한 삶의 지름길이 된다.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이향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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