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카스트로 체제가 굳게 닫힌 쿠바 경제의 문을 열어 낼 수 있을까.
최근 형인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부터 임시로 권력을 넘겨 받은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은 미국의 전문가들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알콜 중독자’ 등 문제 인간으로 묘사되며 형과 다를 바 없는 철권 통치를 펼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의 실용주의적 면모를 조명하는 분석도 적지 않다.
“공산주의 이론에 충실한 형과 달리 동생은 중국의 개방을 ‘사회주의의 배신’이 아닌 ‘앞으로 쿠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경제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라울에 대한 평가는 쿠바의 경제개방이 라울의 집권을 계기로 앞당겨 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다.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3일 “피델이 대중에게 카리스마적 우상으로 존재한다면, 라울은 완벽한 관리자로 알려져 있다”면서 “소련 붕괴 후 농민들에게 잉여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용주의적 정책을 도입한 것도 라울”이라고 보도했다. 쿠바 출신의 새뮤얼 파버 브룩클린대 정치사회학 교수는 “라울이 형보다 더 정치적으로 억압적이라는 평판은 있지만, 그는 더 조직적이고, 더 실용적이며, 관리자로서 더 수완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의 관리자적 능력은 45년 동안 군대를 이끌어 온 방식에서 드러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소련 붕괴 후 라울은 강하고 부유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다. 장교들을 유럽의 비즈니스 스쿨에 보내 자본주의적 경영 방식을 배워 오도록 했고, 해외 자본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관광 산업에도 손을 뻗쳤다.
현재 ‘라 가비오타’란 회사가 쿠바 관광 수입의 60%를 벌어들이는데, 이 회사의 책임자들은 대부분 전현직 군인들이다. 또 군이 운영하는 농장은 쿠바 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돼 온 농장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용주의적 성향뿐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서도 그가 개방정책을 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피델 이후’라는 제목의 라울 전기를 쓴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 브라이언 레이텔은 “라울이 최종 권력을 쥐게 된다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라울은 포악한 이미지 때문에 형과 달리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 개방을 추진하면 변화를 요구하는 쿠바 국민의 열망을 만족시키고 이는 라울의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추측은 모두 라울이 형이 죽은 뒤 권력을 승계하고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을 때를 전제로 한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피델 카스트로의 건강 상태에 대해 누구도 알지 못하고 라울이 군대는 장악했지만 대중적 지지기반은 없는 만큼, 라울이 피델의 확실한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는 추측은 섣부르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피델이 후계자로서의 라울의 낙점에 대한 국내ㆍ국제사회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애드벌룬으로 임시 권력 이양카드를 꺼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산드로 페레스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는 “전례로 볼 때 쿠바가 카스트로의 수술을 외부에 알렸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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