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참패와 7ㆍ26 재보선 완패, 뒤이은 핵심측근 장관의 사퇴.
노무현 대통령이 깊은 고뇌에 빠졌다. 2일 아침 김병준 교육부총리로부터 사퇴 의사를 들어야 하는 상황은 착잡했다. 자신이 임명한 부총리가 비판 여론과 여당의 압박에 밀려 취임 13일 만에 낙마하게 됐다.
김 부총리가 '노(盧)의 남자' '왕의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참여정부의 핵심 실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충격과 아픔은 어느 때보다 크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은 이날 침묵을 지켰다.
김 부총리는 대선 시절 노무현 후보의 정책자문단장을 지낸 '권력의 주주'일뿐 아니라 정부 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거쳤다. 부동산 정책 등 개혁 정책 입안을 주도한 그의 퇴진은 '개혁의 낙마'로 비칠 수도 있다.
지방선거 참패 직후 "위기에 처했을 때 참 모습이 나온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요즘 심경은 과연 어떨까. 청와대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은 여전히 에너제틱(energetic)하다"고 전했지만 대통령의 얼굴에는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느냐"면서 "의혹 검증이나 사실 관계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장관이 물러나야 하는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리더십 위기를 맞고 있다. 청와대측은 "탄핵도 거쳤는데 이 정도쯤이야…"라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철저한 의혹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채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임기 몇 달을 남겨놓고도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인사권인데 그런 마지막 보루를 침해 받았다는 사실은 간단히 넘길 사안은 아니다.
물론 김 부총리가 청와대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자진 사퇴라는 모양새를 갖춰서 물러났기 때문에 당장 노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할 가능성은 적다. 그럼에도 이번 위기가 국정 운영의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위기에 처한 대통령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 더욱이 대통령 지지율은 20% 안팎에 불과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앞으로도 '노무현식' 정책과 주장을 계속 내놓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때처럼 가족이나 측근과 관련된 대형 스캔들이 터지지 않았으므로 정치적 목소리를 계속 높일 수 있는 정당성은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측도 "노 대통령이 앞으로 쓸 수 있는 카드는 많다"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U자형 곡선을 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 대통령은 기로에 서 있다. 아직도 최고통치권자로서 운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개혁의 틀과 방향은 유지하더라도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꾸고 인재 풀을 대폭 확대하면 활로를 찾을 수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국민의 눈 높이에 맞춰 국정운영을 하고 코드 인사를 줄이면 언제든지 지지율이 반전될 수 있다"며 "코드 인사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좁은 범위 안에서만 인재를 골라 쓰는 폐쇄성은 극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따라서 후임 교육부총리, 법무장관 인선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앞으로 여당과 더 가깝게 지낼 것인가 아니면 탈당을 통해 갈라서느냐도 숙제다. 고비 때마다 승부수를 내세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던 노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카드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