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 조영태(67) 할아버지가 샴페인이 든 잔을 들며 힘껏 외치자, "234" 다른 어르신들도 함께 잔을 높이 들며 응답한다.
'9988234' 어르신들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강사와 함께 외치는 구호다. 99세까지 88하게 살아서 2틀 앓고 3일만에 4(死)죽는다는 뜻이다.
"산에서 사고로 죽은 친구로 인해 충격을 받아 한 때는 사람 만나기도 싫을 정도였는데 이 수업을 받고 나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새 인생을 살게 되었어요." 김석수(63) 할머니는 남아있는 자신의 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앞으로 남은 시간도 남을 위해 봉사하고 가족간의 화목에 할애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름다운 생애 마감을 위한 어르신 죽음준비학교'의 2기 수강생들이 지난 7월21일 저녁 서울 노원구 하계동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대강당에서 5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수료식을 가졌다.
지난달 12일 처음 교육을 받으러 온 수강생들은 '도대체 뭘 가르치는 것일까?' 하는 미심쩍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더구나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와 사회복지사들의 나이가 20~40대로 어르신들의 연세에 비하면 턱없이 연하가 아닌가.
"학교이름에 왜 하필 '죽음'이 들어가냐며 이름을 바꾸라는 항의도 많았고, 죽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냐 라는 오해도 있었죠. '죽음준비학교' 명칭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박지은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연구개발부장은 2기 수강생들도 수업초기에는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2기 수강생들이 받았던 수업의 한 대목을 들여다 보자. 지난 과거를 돌아보는 수업시간이다. 먼저 신연예(66) 할머니가 생애에 가장 기뻤던 일을 종이에 적어 발표했다. "결혼 후 6년 만에 딸을 낳았을 때 가장 기뻤습니다…" 바통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이영하(76) 할아버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심장마비로 잃어버린 여식의 죽음을 잊지 못합니다…"
참석한 수강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돌아가며 행복했던 순간, 슬펐던 일, 용서 받고 싶은 것 등 마음속에 담아왔던 옛 기억들을 솔직하게 발표하며 어느덧 서로의 마음을 열고 존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준비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었다.
교육 3주차, 경기 가평 청아캠프에서 수강생들은 이틀동안 전통의상을 입고 과거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역할극을 통해 가족의 갈등과 구성원들간의 입장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가족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촬영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자신의 주먹을 꼭 쥔 손을 석고로 뜨는 작업을 하며 남은 생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도 했다.
사랑의 장기기증센터를 방문하고, 용미리 서울장묘문화센터 등을 둘러보며 노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털어내고 현재의 의미 있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던 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이든 내 몸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아니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광명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오히려 내 자신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어요." 아직은 아내가 장기기증을 반대하지만 설득해서 함께 좋은 일을 하겠다며 조영태(67) 할아버지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지난 1기에 이어 이번에도 프로그램을 진행을 맡은 강사 유경(46ㆍ사회복지사)씨는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이 남은 여생을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3번이나 강의하는 게 힘들지만 어르신들이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남은 삶을 어떻게 가치있게 살 것인가 변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며 활짝 웃는다.
죽음준비학교는 서울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주관으로 자서전 쓰기, 유언장작성, 강의 및 체험학습, 전문상담 등을 교육하며 자격은 서울시내 거주하는 60세 이상 어르신은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문의(02)948-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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