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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당당한 그들을 만난다

입력
2006.08.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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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아나키즘은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열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3대 주축 세력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남북이 자본주의, 공산주의로 갈라져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결을 벌이면서, 아나키즘은 양측 모두로부터 외면당했고, 활약에 상응하는 대접도 받지 못했다.

독립기념관이 광복의 달 8월을 맞아 전시회 ‘아나키스트들의 항일 투쟁-조국을 강탈한 적의 심장을 겨냥하라’를 연다. 정부 기관이 개최하는 최초의 아나키스트 행사다.

15일 개막해 9월 30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에는 식민지 시대 최고의 명(名) 문장으로, 1923년 1월 신채호 선생이 의열단의 요청에 따라 작성한 독립선언서 ‘조선혁명선언’, 이회영ㆍ유자명 선생의 칼 신발 수기 등 유품, 백정기ㆍ이강훈ㆍ원심창 선생 등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폭살 기도 사건(육삼정 의거) 관련 사진과 유품, 중국 남부에서 활동한 남화한인청년연맹에 대한 일제의 조사 보고서 등이 선보인다.

또 일본 천황을 처단하려다 발각돼 22년간 옥살이를 한 재일 아나키스트 박열 선생의 옥중 노트와 그가 출옥한 뒤 국내에서 발간한 잡지 ‘신조선’ 창간호(1946년 7월 호), 재일 한인 아나키스트 기관지 ‘흑색신문’, ‘흑색신문’ 편집부가 배포한 아나키즘 반제 전단 등 60여 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이 가운데 박열선생 관련 자료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일제하 한인 아나키스트들은 조국 독립의 방책으로 아나키즘을 선택하고 일제에 대한 강력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중국에서는 흑색공포단, 남화한인청년연맹, 다물회 등이 중심이 돼 일제의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고 관동군 사령관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와 주중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등의 암살을 시도했으며 톈진(天津)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 폭파를 기도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한인 아나키스트들은 의열단과 더불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의혈투쟁단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는 박열 선생을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이 흑도회, 흑우회, 불령사 등의 단체를 조직해 활동했으나 1923년 일어난 도쿄 대지진과 이에 따른 한국인 검거 및 학살 과정에서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체포되는 수난을 겪었다. 국내에서는 최갑룡ㆍ유림 선생 등이 활동했으나 1930년대 이후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중국 등지로 근거지를 옮겨야 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아나키즘 운동이 ‘무정부주의’로 번역됨으로써, 정부가 없는 무질서한 혼란 상태를 조장하고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폭력주의이자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권력의 집중을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본 모습이 왜곡된 채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아나키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 국내외 한인 아나키스트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알리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아나키스트 이회영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우당 이회영선생 기념사업회의 윤홍묵 이사는 “정부기관에 의한 공식행사가 열려 감격스럽다”며 “이를 계기로 잊혀진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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