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조비리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의혹 속에 숨겨진 진실은 추후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사법개혁은 이와 같은 의혹이 생길 수 있는 현재의 잘못된 형사재판제도를 바로 잡고, ‘국민이 신뢰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신속하고 공정한 사법제도’를 만드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고 기대하는 형사재판정의 모습, 즉 진실을 둘러싼 치열한 설전과 공방은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가상의 장면일 뿐이다. 실제의 법정에서는 수사서류에 의해 피고인의 혐의를 확인하는 조서재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헌법상 보장된 진술거부권은 ‘더 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돈 있으면 변호사를 사라’는 충고로 변질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사기관에 출석한 피의자는 종종 긴급체포의 위협 아래 진술을 강요받고, 자신의 진술이 조서에 어떻게 ‘꾸며졌는지’ 제대로 확인도 못한 채 도장을 찍는 일이 허다하다. 검찰 수사는 검사가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통상 사건과는 달리 참고인 진술조서 등을 수사관에게 맡기지 않고 수사검사가 직접 받는다’는 것이 기사거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작성된 조서가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증명하는 매우 강력한 자료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법정’에서 증명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공판검사가 정작 사건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수사기록’이 법관의 심증 형성에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피고인이나 피해자는 검찰이 어떻게 기소ㆍ불기소를 결정하고 법원이 무엇에 의해 심증을 형성하는지 잘 알 수가 없어, 비공식적으로 은밀한 접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혹을 쉽게 받게 된다. 결국 이러한 환경이 법조비리를 위한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조서재판의 극복을 통한 ‘공판중심주의 확립’을 형사사법 개혁의 구체적인 목표로 삼았다. 형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된다고 한 순간에 법조비리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오염된 토양을 상당수준 정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수사기관에서의 피의자의 자백을 증거로 사용하는 외국의 예를 들면서 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려는 발상이 편협하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수사관에게 진술을 거부하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겠다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일체의 신문이 중단되는 외국과는 달리 온갖 방법에 의해 자백이 강요되는 우리나라를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도 피의자의 자백을 받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수사관행과 피의자의 자백조서가 제출되면 오히려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법정의 모습은 조서재판 극복의 필요성을 강하게 반증해주고 있다.
사개추위는 이와 같은 목표 하에 대법원과 법무부, 형사법학계, 시민단체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분야의 의견을 모아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마련하였고, 검찰도 이러한 결과에 동의하였음은 물론이다.
폐쇄된 조사실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여 지난 3년간의 치열했던 논의과정과 합의 결과를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일부 법조인들의 무모한 시도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법조비리가 재발되지 않으려면 형사사법에서 공판중심주의의 실현이 절실하고, 조서재판의 극복은 바로 그 공판중심주의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ㆍ사개추위 기획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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