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곳은 오래된 낡은 건물이다. 그래서 허물고 새로 짓자는 요구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이 오래된 낡고 불편한 건물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곳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30년도 넘는 세월을 건너 저 교실 구석에 앉아있던 나를 볼 수 있고, 또 그만큼의 세월을 건너 내 자리에 서게 될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시간과 그 속에서 부대끼는 인간 삶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퉁이에서 잊혀진 친구의 모습을 불현듯 발견하기도 하고, 그 건물의 어떤 냄새로 인해 나는 30년 전으로 즉각 돌아가기도 한다.
● 강북을 '강남처럼' 개발한다?
건물이나 삶의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삶을 담는 그릇이며 삶을 재단하고 규범화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서울은 그 동안 많이 변해왔다. 강남이 개발되었고, 전쟁 이후의 궁핍하고 불결한 모습을 버리고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그 사이에서 600년 고도의 이미지는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제 조금 살만해져서 전통과 유물의 보존에 신경을 쓴다고 광화문을 제자리에 복원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 한편으로 강북 개발, 뉴타운 건설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강남에 비해 강북에는 조선 왕조의 흔적들이 많고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과 같은 구도시적인 요소들도 많다. 이들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켜켜이 인간의 체취가 배인 인간의 이야기이다. 엄청난 이야기가 있는 도시, 깊은 울림으로 말하고 있는 도시, 서울은 원래 그런 도시이고 강북은 그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런데, 강북 개발의 주된 목표와 내용은 '강남처럼'인 것 같다. 나는 일생을 거의 강북에서 보냈기에 강남이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른다. 하지만 낡은 강의동이 편하듯 나는 강북의 좁고 구부러진 길, 다닥다닥한 삶의 공간들, 어디서든 시야에 들어오는 북한산, 이런 것들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이 험한 세상에서 그래도 단단한 기반 위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얻는 것은 어릴 때부터 익숙한 풍경 속을 오가는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오랜 세월을 버텨온 나무와 집과 길과 건물들이 있는 도시는 얼마나 품위가 있는가?
서울을 스카이라인이 멋있는 현대 도시로 만들려 하는 한, 서울은 뉴욕이나 시드니의 아류 도시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강북을 강남처럼 만들어놓는다면 강북은 그나마 오랜 시간이 만든 인간적 체취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잃고, 단순한 강남의 아류가 될 것이다.
● 고유의 자연ㆍ문화유산 살려야
20세기 초 한국예술에 대해 커다란 애착을 갖고 있던 유종열이라 불리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자신의 조국에 의해 자행된 광화문 철거를 바라보면서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그대의 운명이 지금 눈앞에 다가왔다"고 탄식하였다.
"여러 관아를 좌우에 거느리고 솟아있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하여 멀리 큰 거리 저쪽으로 광화문을 바라보는 그 광경은 잊을 수가 없다. 자연과의 배치를 깊이 고찰하여 계획된 그 건축에는 이중의 아름다움이 있다. 자연은 건축을 지키고 건축은 자연을 장식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함부로 그들 사이에 있는 유기적 관계를 파괴해서는 안된다."
그가 보았던 아름다움은 주변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고층건물들로 이미 많이 파괴되었다. 그래도 강북은 '강남처럼' 개발될 것이 아니라, 강북만이 가진 자연과 문화의 유산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김혜숙ㆍ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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