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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제 자리에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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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제 자리에서 말하기

입력
2006.07.2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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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갈수록 일정한 문제에 대해 뚜렷한 소신과 주견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게 된다. 모든 사안에는 양면이 있으며, 작용과 함께 부작용과 반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서로 다른 의견이 이념갈등으로 직결되고, 그로 인한 대립이 심한 사회에서는 보편타당하고 건전한 양식에 바탕을 둔 의견을 견지하기 힘들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절명시(絶命詩)에 나오는 대로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ㆍ인간세상에 글 아는 사람노릇 어렵기도 하구나)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건강한 공론의 형성도 대단히 어렵다.

● 전직각료 등의 잇따른 정권비판

그래서 일도양단(一刀兩斷) 쾌도난마(快刀亂麻)인 듯 생각의 칼을 쉽게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더없이 위태로워 보인다. 삶의 깊이나 경험에서 아직은 미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공적 지위에 올라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하거나 앞뒤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생각의 밑천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특히 그렇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한미FTA건 대북ㆍ대미정책이건 각종 현안에 대해 현직 때와 다른 발언을 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통령을 독대(獨待)하지 못하는 불편을 거론한 전직 장관도 있었다.

안에서는 못 보던 것들이 밖에서는 잘 보이기 때문일 수 있다. 또는 잘못된 정책에 대한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고 임기 말에 흔히 나타나는, 인기 없는 정권과 결별하는 행태일 수도 있지만 옳은 지적도 많다.

그런데 왜 현직에 있을 때는 충분히 의견을 말하고 이를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지 못했을까? 벼슬을 하는 것은 익히고 닦은 학식과 인격을 바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다.

뜻에 맞지 않거나 포부를 펼 수 없다면 벼슬을 맡지 말거나 맡은 다음에라도 스스로 떨치고 나오는 게 도리다. 그렇게 그만둔 사람이라야 비판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다. 자리를 떠난 뒤의 발언은 그들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부터 하게 만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얼마 전 어느 기관장의 '본인은…'이라는 표현 때문에 국회에서 말싸움이 벌어졌다. 쉽게 말하면, 국회의원은 "본인이라니, 어따 대고 본인이야, 당신이 무슨 전두환이야?"하고 따졌고, "그래서? 늬네들은 맨날 '본 의원은…' 그러잖아"가 기관장의 반격이었다. 우스운 해프닝이었지만 그 기관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연설문 작성자가 '저는…'이라고 썼다면 그렇게 읽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렇게 써 올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기관장도 토론은 자주 하지만 마음에 맞지 않는 발언이 나오면 피때를 올리거나 면박을 준다. 솔직한 의견 제시나 '저는…'이라는 연설문 작성은 그래서 불가능하다.

논어의 不在其位 不謀其政(부재기위 불모기정)이라는 말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자리의 일을 도모/간여/용훼하지 말라는 뜻이다. 바꾸어 해석하면 그 자리에 있을 때 정직하고 충실하게 소임을 다하라는 뜻일 수 있다. 소임을 다하려면 구애 없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구조부터 갖춰져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빠짐없이 모으고 부작용 반작용까지 다 감안한 정책이라야 튼실하고 오래 간다.

● 다른 말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

노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지금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벌이는 토론은 동조이곡(同調異曲)일 뿐이다. 대통령은 싸움닭 기르듯 국회의원에게 대적할 말을 장관들에게 강습하면서, 정책은 결국 말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책의 입안 역시 말에서 시작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도 많지만, 어쨌든 코드가 다르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공화국이 아니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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