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삼성전자는 미국 조사기관의 자료를 인용, 세계 5대 휴대전화업체 중 자사 제품의 평균 가격이 179달러로 가장 높다고 밝히며 "이는 고가마케팅 효과를 반영한 것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수익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다음은 소니에릭슨(171달러) LG전자(160달러) 모토로라(147달러) 노키아(124달러) 순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앞서 2004년 시장점유율에서 삼성전자가 마침내 모토로라를 제쳤다는 보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양과 질에서 모바일 강국의 위세를 확실히 굳혔구나' 하는 뿌듯함을 맛봤다.
▦실제로 1년반 전까지만 해도 한국 휴대전화의 공세는 눈부셨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은 매출 및 영업이익 급락으로 벼랑 끝에 내몰렸고, 노키아를 따라잡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세원텔레콤 텔슨전자 등 중견업체는 중국업체의 저가공세를 이기지 못해 잇달아 문을 닫았지만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대기업은 고화소의 카메라와 고용량의 MP3 등 첨단기능을 갖춘 프리미엄 제품을 한 해에 100종 이상씩 쏟아내며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총아'로 행세했다. 기업은 물론 정부와 소비자도 이런 분위기에 중독돼 신선놀음을 즐겼다.
▦그러나 도끼자루 썩는 줄은 몰랐다. 첨단기능의 업그레이드에 열광하던 기존 소비자들의 기호는 디자인과 브랜드 선호로 급속히 옮겨갔고, 인도ㆍ남미 등의 거대한 신흥 저가폰 시장이 업계판도를 좌우하는 변수로 대두됐다.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에릭슨은 이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탄탄한 플랫폼과 높은 브랜드파워를 축적한 이들은 단일모델이면서도 지역과 계층별로 기능과 색상을 차별화하는 전략과 원가경쟁력을 앞세워 고가품 대체수요와 저가품 신규수요를 아우르는 전방위 공세를 펼쳤다.
▦노키아는 프리미엄 라인업 'N시리즈' 출시와 함께 독특한 벨소리 하나로 자사폰을 알게 하는 사운드마케팅으로 승승장구하고, 모토로라는 단일모델로 1년여 만에 5,000만대 이상 판매한 초슬림형 '레이저폰'을 내놓아 'RAZR 쓰나미'라는 조어까지 만들었다.
소니에릭슨은 소니브랜드를 차용한 '워크맨폰'과 '사이버샷폰'으로 '마이너리거'라는 오명을 단숨에 씻어냈다. 그 결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전화 부문이 받은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반기에 양사가 전략폰인 '울트라 에디션'과 '초컬릿폰'으로 대반격에 나선다는데,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들의 고단함이 눈에 선하다.
이유식 논설위원 ya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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