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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셸부르의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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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셸부르의 우산

입력
2006.07.2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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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거세졌다. 우산을 갖고 나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어코 우산이 필요해진 게 성가셨다. 들를 곳이 세 군데나 되는 데다 가방이 책들로 무겁기 짝이 없었다. 마지막에 들를 동생네까지 들고 다녀야 할 짐이었다.

축 처진 어깨를 추슬러 우산을 펴들고 버스에서 내리자,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흙탕물 아래서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퐁퐁 솟아올라 퍼지는 듯했다. 이내, 연주되고 있는 곡이 '셸부르의 우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카리나일까? 빗속에서 낭랑한 '셸부르의 우산'은 나를 순식간 달콤한 감상에 빠뜨렸다.

비도 우산도 무거운 짐도, 그 살짝 처량함으로 나를 남미 악기의 연주 소리에 더 젖어들게 했다. 그 옛날 그저 지나쳤을 뿐인 셸부르 거리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공업 소도시 같은 셸부르는 마침 날씨도 흐려서 더욱 우중충해 보였다. 그 풍경의 우중충함조차 달콤하게 떠올랐다.

음악소리는 KT빌딩 안에서 들려왔다. 로비에서 공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들어가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빠 그 앞에서 걸음을 돌렸다. 음악소리는 한참이나 나를 따라왔다. 돈암동에서도 길음동에서도 귓가에 맴돌았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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