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를 놓고 노무현 정부의 국내적 지지층이 계속 등을 돌리고 있다. 전직 관료, 여당, 진보적 논객들마저도 공개적으로 비판의 고언을 시작하였다. 한미관계와 관련된 이러한 지지층의 이동은 한미동맹이라는 안보 이슈와 한미 FTA라는 경제 이슈로 나뉘어 각각 다른 이유로 일어나고 있지만 지지층의 이반이라는 일반적인 현상에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 3년반 동안 말싸움만
첫째는 현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전반적 신뢰 상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끄럽게 군 것만큼 해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적 이슈인 부동산, 양극화, 실업, 그리고 교육문제 등에서 그런 것 같이 한미관계와 북핵문제도 시끄럽게 굴기만 하고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물론 시끄럽게 군 것에는 이유가 있다.
상대방과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상대방과의 말싸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단 서로 의견의 차를 확인한 다음에는 상대방보다 더욱 정교하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대안과 전략을 수립하고 일관적으로 로드맵을 실천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러한 문제 해결의 길로 전진하지 못하고 3년 반 동안 상대방의 공격에 대하여 자신의 시각이 옳다는 고집스러운 말싸움만 하고 말았다. 즉 목표가 문제의 해결이 아닌 노선투쟁의 승리로 바뀌고 말았다.
노선투쟁의 승리는 닫힌 내부정치의 공간에서 정적을 숙청하고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은 되지만 열린 민주주의의 공간에서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특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공간에서 사회적 문제를 말싸움으로 끝장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다 나은 전략 및 정책의 수립과 일관된 추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모든 세력과의 노선투쟁에 오히려 힘을 기울였고, 그러다 보니 지지층은 얇아지고, 정부 내의 인사도 청와대의 노선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일부에 국한된 회전문 인사가 되었다.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는 노선투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정부는 지식인처럼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전략을 수립하여 국민을 안심시키고 문제해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두번째의 문제는 정부와 국민간의 관계 설정의 문제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현 정부는 입장이 다른 어떠한 상대방과도 말싸움만 하는 바람에 일방적이고 독선적이 되어버렸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참여정부에서 참여가 배제되고 개혁적 민주정부에서 투명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이슈가 한미 FTA이다. 이미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세계화와 민주화가 대세인 상황에서 이제 한국을 실패한 사회주의와 쇄국으로 몰고 가고자 하는 세력은 없다.
다만 개방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개방의 다양한 모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상당한 입장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수학 문제와 같이 정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이익이 사람마다 첨예하게 대립되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논쟁보다 전략을 세워라
그런데 현 정부는 갑자기 느닷없이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심사숙고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던져버렸다. 국민에 대한 설득과정과 지지도 확보하지 않고, 또 한미 FTA에 대한 연구의 축적과 협상의 주요 쟁점을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고 권위주의적이고 쇄국적인 방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세력이 생겨나면 또 다시 노선투쟁에 돌입하여 온갖 모순이 발견되는 어휘와 논리로 비판세력을 쇄국주의자로 몰아버린다. 이렇게 배타적인 정부의 방식에 대하여 등을 돌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참여정부는 말한다. 비판만 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대안은 분명하다. 국민과 함께 하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근ㆍ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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