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여러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한 피의자에 대해 각각의 혐의로 4개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 시한이 끝날 때마다 연달아 집행한 사실이 드러나 편법 수사 시비와 함께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피의자는 체포가 이어지자 체포적부심사를 청구, 법원의 석방 결정까지 받았지만 경찰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체포영장 집행으로 다시 수갑이 채워져 유치장에 감금되기까지 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5월 15일 사기 및 조세범처벌법위반 등 혐의로 5건의 고소를 당한 이모(64)씨를 체포해 조사했다. 48시간의 체포 시한을 앞두고 경찰은 이씨가 1,300만원을 떼먹었다는 피의 사실 1건에 대해 검찰에 구속 지휘를 요청했다. 검찰은 그러나 비교적 가벼운 사안이라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경찰은 5월 17일 오전 체포 유효 시간인 48시간이 지나자 이씨의 부인을 불러“석방키로 했다”며 신원보증서를 받았다. 이씨가 석방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찰은 다시 다른 피의 사실에 대한 체포영장을 들이밀며 경찰서 내에서 이씨를 체포했다.
이씨의 부인은 변호사를 통해 체포적부심사를 서울남부지법에 청구, 18일 법원으로부터 이씨 석방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씨는 경찰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경찰은 또 다른 건으로 발부 받아 놓은 체포영장을 이씨에게 제시하면서 “새롭게 체포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처사에 당황한 이씨의 가족들은 변호사를 통해 다시 한번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했고 이씨는 서울남부지법으로부터 두 번째 석방 결정을 받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도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체포영장을 청구했고 이를 법원에서 인정, 발부해준 것”이라며 “한 사건에 대한 48시간 동안의 체포 시한이 끝났다 해도 다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발부된 다른 체포영장을 집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변호를 맡았던 박종민 변호사는 “영장을 연달아 집행해온 관행을 믿고 경찰이 느긋하게 조사를 한 측면이 있다”며 “여러 혐의에 대해 각각의 체포영장이 청구됐더라도 도피자가 일단 체포되면 이미 발부된 다른 영장들의 효력은 상실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법의 임복규 판사는 “한 경찰서에서 한 피의자에 대해 발부 받아 놓은 여러 장의 체포영장을 돌려가며 이용, 계속 구금하는 것은 범죄 수사로 인한 부당한 인권침해를 막는다는 영장제도의 취지에 반한다는 피의자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닌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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