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는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을 따라 기꺼이 프낙에 갔다. 프낙은 파리에 있는 대형 서점이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세계를 보는 창이거나 문이었던 책들, 오솔길을 따라 늘어선 회양목 울타리 같은 서가였거늘! 알아보지 못할 글자들로 그 안이 채워져 있으니 답답하고 지루한 첩첩장벽이었다.
친구들은 입에 맞는 책을 뜯어먹으러 염소 무리처럼 흩어지고, 나 혼자 그림책을 들춰보며 몸을 뒤틀다 찾아 든 곳이 음반 코너였다. 음반이라고 호락호락한 건 아니었다. 껍질에 쓰인 글자가 무슨 말인지 통 읽을 수가 없으니. 그래서 서울에서는 안 하던 짓을 했다.
헤드폰으로 특별판매 음반을 들은 것이다. 거기서 우연히 만난 음반이 라이바크(LAIBACH)의 'ANTHEMS'다. 순식간에 권태가 씻겨 사라졌다. 이것이 서라운드다!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두근거리는 음악이 머리통 속을 짜릿하게 달렸다.
그 날 숙소에서 저녁밥을 먹을 때, 마음 설레며 내 전리품을 틀어줬다. 그런데 대체로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한 친구는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 나도 프낙에서 들을 때만큼 좋지가 않았다. 왜지?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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