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기업들에 의해 1,300여년만에 ‘부활’하고 있다.
신라나 백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잊혀져 온 고구려가 최근 국민적 관심사로 떠 오르자 기업들이 고구려를 주제로 한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고구려 문양을 도입한 가전제품이나 고구려 관련 금융상품 등이 잇따르고 있다. 고구려를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민족의 자부심 ‘고구려’가 기업들에게도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는 올해초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 문양을 전면에 새긴 휘센 에어컨을 출시했다. 삼족오는 다리가 셋인 전설속의 새로 용이나 봉황보다 상위 문화를 나타내며 고구려 왕실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김선규 LG전자 디자인센터 책임연구원은 “동북아의 맹주였던 고구려처럼 세계 최고의 에어컨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삼족오 문양을 채택했다”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삼족오가 새겨진 휘센 에어컨은 프리미엄 에어컨 예약판매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휘센 에어컨은 6년 연속 가정용 에어컨 전세계 판매 1위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그룹은 아예 고구려 마을을 재현해낼 각오이다. 강원 속초시의 설악 한화리조트 부지 2만7,000여평에 옛 고구려와 발해 시대의 궁궐과 관청 저잣거리 서민마을 등 100여동의 고건축물을 건립중이다. TV 드라마 무대로 활용한 뒤 고구려 민속촌으로 꾸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지난달부터 ‘고구려 지킴이 통장’(정기예금)을 판매하고 있다. 통장거래에 따른 수익금 일부를 고구려 관련 역사 연구 단체에 기부하거나 고구려사 교육과 문화사업에 환원하는 상품이다. 또 고구려 유적지 여행 목적의 고객에겐 여행자 보험 가입과 환율 우대 혜택까지 준다.
고구려 붐을 놓칠 수 없는 여행업계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롯데관광은 고구려 유적지 탐방 여행 상품을 내 놓았다. 고구려의 정치ㆍ경제ㆍ문화 중심지였던 지안 등을 집중적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고구려 유적지 전문 여행사인 ‘고구려닷컴’도 다양한 일정의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고구려 마케팅은 온라인 게임 업체들에게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은 만화가 김진씨의 ‘바람의 나라’를 원작으로 한 같은 이름의 판타지 게임으로 10년 이상 500억원가량의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모바일 게임업체 엔플레이도 ‘고구려영웅전-주몽편’을 개발하고 있다.
고구려나 삼족오를 소재로 한 액세서리나 캐릭터 상품도 잇따르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고객들은 웅장한 기상과 광활한 영토의 고구려라는 상징을 소비함으로써 일종의 자부심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며 “고구려 붐을 업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기업들의 ‘고구려 마케팅’도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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