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아들이 익사했다고 했다. 엄마가 달려간 현장은 강원도 내설악 오세암 아래 등산로였다. 전 날 내렸다는 소나기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미 건천(乾川)이 된 등산로 옆엔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건장하고 수영도 잘 하는 아들이, 소나기로 물이 좀 불었기로서니 그만한 물살에 휩쓸렸을 리 없고, 200여 ㎙나 떠내려 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린 대학생 아들의 시신을 보며 엄마는 뭔가 음모가 있다며 통곡했다. 사건을 맡은 경찰만 오해를 받았다. 1980년대 초 실제 있었던 일이다.
■ 흐르는 물에서 사람은 어느 정도의 압력을 받을까. 유체(流體)압력은 깊이로 인한 정압(靜壓)과 흐름에 의한 동압(動壓) 두 가지다. 정압은 생략하자. 동압=(1/2)x(유체 비중)x(속도 제곱). 초속1㎙로 흐르는 물에선 1㎠에 약 5㎏의 압력이 닿는다. 성인이 양쪽 무릎까지 잠기면, 대략 '폭10㎝ x 길이40㎝ x 2'하여 4톤의 힘을 받는다.
달리는 승용차에 정강이가 부딪히는 정도다. 물 속은 유속이 더디고, 장딴지가 평면이 아니어서 감압(減壓)요인이 많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다. 소가 서 있지 못하며, 레미콘 트럭이 떠내려가고 철근콘크리트 교각이 밀려난다.
■ 공기는 어떨까. 이 달 초순에 있었던 중급 태풍 '에위니아'는 초속 25㎙ 정도의 바람을 동반했다. 이 경우 1㎠에 약 4㎏, 가로ㆍ세로 1㎙ 넓이의 벽에는 40톤 정도의 힘이 부딪히는 셈이다(1959년 대형 태풍 사라의 최대 풍속은 초속 45㎙). 바람의 방향이 자주 바뀌고, 공기압도 변하고, 건물구조 상 압력이 수직으로 닿지 않는 등 숱한 변수가 있겠지만 놀랍다.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공사장 강철판이 종이처럼 구겨져 날아다닐 만하다. 공기(바람) 중에 물(비)이 섞일 경우 압력이 급상승함은 물론이다.
■ 친근한 물이라고 얕보면 안 된다. 아침저녁으로 건너는 개울물이고, 더워지면 으레 몸을 담그는 개천이지만 흐름이 빨라졌다고 느끼면 결코 자신의 근력을 과신하지 말 일이다.
조그만 도랑마저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초속 1㎙로 흐르는 물은 초속 30㎙ 이상의 태풍이 정면으로 부딪혀 오는 것과 같으며, 유속이 초당 1.5㎙만 되면 태풍 사라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장마는 끝나지 않았다. 개울물 시냇물 개천 하천을 찾는 기회가 많아지는 시기다. 난개발과 관리소홀로 인한 수해의 책임추궁과는 별도로 조심 또 조심하자.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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