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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3代' 한 세기 걸친 마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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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3代' 한 세기 걸친 마을사랑

입력
2006.07.2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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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봉사정신을 후세에 전하고자 그 고마운 뜻을 담아 동민의 이름으로 비를 세웁니다.”

21일 오전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평마을 입구. 백발의 박완규(72)씨는 마을 주민들이 세운 공적비 앞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공적비는 주민들이 박씨와 그의 할아버지(박태화), 아버지(박병철) 3대가 연이어 95년간 마을 이장을 맡아 온갖 궂은 일을 해결해온데 대한 보답의 뜻으로 세운 것.

마을기금 700만원을 들여 세운 높이 1.8㎙ 크기의 공적비에는 95년간 이장으로 봉사해준 박씨 3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후손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남겨주기 위해 그와 선친들의 공적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주민들은 돈도 안되고 힘들기만 한 일을 묵묵히 해온 박씨를 위한 경로잔치도 함께 열었다. 박씨는 “선배 이장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맡은 일을 했을 뿐”이라며 공적비 제막식에 축하차 찾아온 이웃과 방문객들에게 기쁨의 미소와 눈물로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박씨가 이장 일을 처음 맡은 것은 1966년 6월. 그는 군 제대 후 마을을 지키겠다는 마음에 대처로 나가지 않고 고향에 남았다. 마을 예비군 무기고 경비대장 일을 하게 됐으나 당시 마을은 도박 열풍에 휩싸여 많은 가정이 파탄에 빠져있었다. 박씨는 도박을 추방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과 함께 나섰다. 젊은이들이 앞장서자 주민들은 순순히 도박을 끊었고 청년들을 이끌던 그에게 신망을 보냈다.

이후 이장으로 있던 박씨의 아버지가 고령으로 더 이상 마을 일을 보기 어렵게 되자 그를 눈여겨 보아왔던 주민들은 그에게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동네 일을 맡겼다. 이후 “1년만 더, 1년만 더” 하는 주민들의 강권에 못 이겨 이장을 맡은 지 어느덧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박씨는 올해 초에야 주민들의 만류를 겨우 뿌리치고 이장 직을 내놓았다.

박씨의 할아버지 33년, 그 뒤를 이어어 아버지가 22년간 이장으로 마을 일을 맡아 박씨 3대의 이장 활동기간을 모두 더하면 95년으로 거의 한 세기에 이른다. 그 사이 130여가구 580여명의 주민이 살던 마을 규모는 80여가구 200여명으로 줄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빠져나가 주민 평균연령도 60세를 훨씬 넘겼다.

박씨는 “25년 전 마을 주민들과 함께 60여일 동안 삽과 곡괭이로 8㎞ 떨어진 곳까지 도로를 뚫고 그 길로 시내버스가 다니도록 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공적비가 세워져 지하에 계신 할아버님과 아버님도 무척 기뻐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후임 이장 김용환(61)씨는 “쉽지 않은 동네 일을 40년간 어떻게 해왔는지 존경스럽다”며 “3대에 걸친 선배 이장들의 지극했던 동네사랑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서산=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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