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 등 아시아의 재선 정치지도자 3인방이 ‘2기 우울증’에 걸렸다.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서구에 비하면 미천한 역사지만 아시아에서 미국의 맹방이자 비교적 안정적인 민주화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던 이들 국가의 연임 지도자들이 국민의 신망을 잃고 퇴진 위기에 직면했다”며 20일 이같이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역대 재선 대통령들은 정치스캔들로 얼룩진 2기를 보내며 레임덕을 자초했으나, 이들 3인 정치 지도자가 직면한 위기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 친족들의 부정부패와 부정선거 등 ‘독재형’ 비리 혐의로 민심 이반을 불렀기 때문이다.
탁신 총리는 지난해 2월 하원선거 승리로 연임의 꿈을 이뤘으나 1년도 되지 않아 퇴진 압력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탁신 총리는 가족 보유의 대기업 지분을 해외 매각하면서 한푼도 세금을 내지 않았고, 비판 세력에 소송을 남발하는 등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로 인해 올 초부터 수도 방콕의 거리에는 반 탁신 시위가 꼬리를 물었다.
설상가상 승부수로 던진 4월 조기 총선은 부정선거로 얼룩졌다. 헌법재판소는 그의 집권 여당 타이락타이당의 4월 총선 승리를 무효화했고 이달 13일 총선 선거부정 혐의에 대한 심리 착수를 결정했다. 헌법재판소가 집권당 해산을 결정한다면 탁신 총리의 정치 생명은 끝날 수도 있다.
2001년 ‘피플파워’로 대통령에 오른 아로요 대통령은 2004년 선거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지난달 26일 두번째 탄핵 정국에 휘말렸다. 지난해 야당이 부정선거, 부정부패, 헌법유린 혐의로 아로요 대통령에 대해 발의한 탄핵안의 만료 시점에 맞춰 새로운 탄핵안이 의회에 제출된 것이다. 아로요 대통령은 2월 군부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었다.
천 총통은 2004년 5월 재선 당시 거리 유세 도중 발생한 피격 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경제 개혁 등 정책 실패에다 부인 우수전(吳淑珍) 여사가 뇌물 수수 의혹을 받고, 사위는 주식 내부거래 혐의로 기소되는 등 친인척 비리도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지난달 27일 파면안 부결로 기사회생하는 듯 했으나 이제는 집권 민진당마저 내분이 일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들 재선 3인방이 2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할 지는 불투명하다. 탁신 총리는 총선 직후 사임 선언을 했다가 한달여만에 집무실로 돌아왔고, 아로요 대통령은 끊이지 않는 쿠데타 기도설과 이미 한차례 탄핵 위기를 뚫었고, 천 총통 또한 파면 정국을 넘어서는 뚝심을 보여줬다. 이 신문은 “아시아 정치는 서구식 민주주의와는 달리 그들 자신의 룰에 따라 움직인다”며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안정적이다”고 덧붙였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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