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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코레야 1903년 가을 '이미 일본색 깊이 스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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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코레야 1903년 가을 '이미 일본색 깊이 스며든…'

입력
2006.07.2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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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훑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때, 기분이 참으로 미묘해진다. 우리를 과하게 긍정하는 것도, 반대로 지나치게 깍아내리는 것도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그런데도 외부의 시선은 더 궁금해진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코레야 1903년 가을’이 보여주는 것은 100년 전 한국 사회다. 폴란드인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가 러일전쟁 발발 직전인 1903년, 러시아 황실지리학회 탐사대의 일원으로 부산에 도착한 뒤 뱃길을 이용해 원산으로 갔다가 다시 금강산, 평강, 양담, 안양, 양주, 서울로 이어온 여행의 기록이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여로에서 만난고 본 많은 사람의 증언과 사회 현상, 그리고 자연 모습을 통해 당시 한국을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눈에 띄는 대목은 남루한 현실, 관료에 대한 원성, 사회 곳곳에 밴 일본의 영향이다. 그가 본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억눌려 있어 옆 나라 일본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진취성을 찾아볼 수가 없”고, 그가 가본 곳은 “어디나 예의 그 황량한 폐허와 먼지, 혐오스러운 불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물에 씻겨 내려 진흙에 반쯤 파묻힌 작물과, 폭우가 휩쓸고 가 흙빛으로 변한 논도 자주 보았다. 백성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 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관료에 대한 원성은 컸다. 사또나 관리, 정부의 파발꾼이 지나갈 때 사람들은 “강도 납신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저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양반과 관리들은 민중을 끝없이 핍박하고 강탈하면서 마치 온 나라가 자기들만을 위한 것 인양 행세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한달 남짓 짧은 여행기간 동안, 관료의 부패와 무능을 목격ㆍ체험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텐데도 이 같은 표현이 책에 가득한 것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런 원성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영향력은 이미 사회 깊은 곳까지 스며 있었다. 금강산 석왕사의 승려들은 검은 빛의 일본식 기모노를 입고 검은 빛의 일본식 두건을 쓰고 있었다. 일본인은 서울, 부산에 자기들만의 깔끔하고 편리한 주거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산 채로 우리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어요…우리 모두 곧 그들의 노예가 될 겁니다. 서울 땅의 삼분의 일이 벌써 그들 소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젊은 관료 신문균은, 현실화하는 일본의 침략상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한국의 종교, 산, 사찰, 농업, 음식, 기후, 학교, 가축, 공동묘지와 장례의식, 여성의 지위, 상공업과 해외교역, 신분, 심지어 기생사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역할을 나누고 깊게 쌓인 눈 더미로 녀석을 유인한 뒤 공격과 도망치기를 반복하면서 힘을 뺀 다음 제대로 걸려들면 창으로 마구 찔러내는 식의 사냥법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거슬리는 대목도 있다. 우리를 낮춰 보고 일본을 문명국으로 인정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일본인들이 유능한 민족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동양 여기저기에 자기 식의 생활방식을 주입하고 중국인과 한국인은 일본인을 형제로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꺼이 복종한다.” “일본이 진보와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이 불쌍한 한국 또한 일으켜 세워주리라 기대해본다.”

민족운동,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 그의 이력을 볼 때, 이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러시아 식민지인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누구보다 갈구했을 그가, 일본의 침략 야욕을 읽지 못한 채 겉모습만 보고 한국과 일본을 대비시킨 것이 아쉽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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