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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고시원 가보니/ 무늬만 고시원 실상은 '신종 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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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고시원 가보니/ 무늬만 고시원 실상은 '신종 쪽방'

입력
2006.07.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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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무슨, 갈 데 없으니까 사는 거지. 설마 불 나겠어? 나면 다 죽지.”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S고시원. 3층 건물 중 2, 3층이 고시원이다. 이곳‘고시원생’인 일용직 노동자 황모(58)씨는 “진짜 고시생은 없고 대충 다 나 같은 처지다. 시설 좋은 쪽방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층에 들어서니 겨우 1명이 운신할만한 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너머는 어두컴컴했다. 바닥엔 때가 전 붉은 카펫이 길게 깔려있다. 불 나면 유독 가스를 뿜어낼 게 분명했지만 총무라는 60대 남자는 “신발 때문”이라며 심드렁했다.

총무가 안내한 방은 가관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들이 마주보고 있다. 방 안도 카펫이 깔려있고 역시 어둡다. 0.7평쯤 되는 방엔 침대와 TV, 책상은 있지만 의자는 없다. 총무는 “우리집엔 학생은 없으니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40평 남짓 공간에 방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덕지덕지 붙여 놓아 창문이 아예 없거나 반쯤 걸린 방, 기둥에 잇댄 방 등 20여개의 방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월 17만원이지만 창이 난 방은 7만~9만원 더 낸다.

소화기나 스프링클러는 아예 없다. 주통로를 빼면 비상구도 없다. “불 나면 어떡하냐”고 묻자 총무는 “실내 금연이니 안전해. 그 값에 이만한 시설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낮 시간이지만 곳곳에선 코 고는 소리와 TV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컵라면과 매캐한 담배 냄새도 났다. 취업 준비생인 김모(25)씨는 “비슷한 처지라 금새 친해져 함께 방에서 술도 마시고 간단한 음식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휴게실엔 가스버너도 보였다.

‘OO고시텔’ ‘XX미니텔’ 등 서울 시내 다른 고시원도 비슷했다. 외곽지역엔 주로 일용직 노동자나 지방에서 올라온 취업 준비생, 가출 청소년이, 도심엔 미혼 직장인이나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주고객이다. 한국고시원협회는 시내 고시원 3,000개 중 3분의 1을 신종 쪽방 형태인 이름만 고시원으로 추정한다. 쉽게 구할 수 있고 싸고(월세 20만원대) 전기세 등 추가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공부방이던 고시원은 외환위기 때인 1997년께부터 돈 없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숙식이 가능한 쪽방 형태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독서실과 달리 허가ㆍ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돼 관리나 시설은 허술하다.

안전 사각지대가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창문에 절도 방지용 창살을 단 곳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다 보니 항상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고 불이 나면 대형 인명피해가 예고돼 있다. 8명이 숨진 잠실 고시원 화재는 전형적인 예다.

한 고시원 거주자는 “잠실 때문에 난리들인데 운이 나빠서 그렇지. 어디 화재가 쉽게 나냐”고 말했다. 뿌리깊은 안전불감증도 사라지지 않았다. 소방방재청은 24일부터 8월 14일까지 전국 4,211개 고시원에 대해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키로 하는 등 이번에도 ‘뒷북 행정’에 나섰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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