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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고시원건물 화재/ 경보기는 먹통… 탈출구 없어 아비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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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고시원건물 화재/ 경보기는 먹통… 탈출구 없어 아비규환

입력
2006.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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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인재(人災)였다. 경보도 울리지 않았고 탈출구도 없었다. 말만 고시원일 뿐 숙박시설로 변질된 강남 번화가의 고시원 건물에서 불이나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일 오후 3시53분께 서울 송파구 잠실동 4층짜리 건물 지하 노래방에서 기름냄새와 함께 ‘펑’ 하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불은 순식간에 1층 음식점, 2층 건축설계사무소, 3,4층 나우고시텔(고시원) 등 건물 전체를 점령했다. 하지만 3,4층 사람들은 “불이 난 줄도 몰랐다”고 했다.

10분쯤 지나자 1층에서 소란이 일었다. 2층에서 일하던 도은정(24ㆍ여)씨는 “하도 시끄러워 무슨 일인가 하고 사무실 문을 연 순간 시커먼 연기가 몰려들어왔다. ‘불이다’라고 다급히 소리친 뒤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건축설계사무소 직원 6명은 모두 바깥 간판을 딛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

3,4층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1평 남짓의 방을 3층에 34개, 4층에 36개나 만드느라 창문조차 없는 방이 층마다 10개 가까이 됐다. 건물 바깥 쪽에 위치한 방 역시 창문이 평방 80㎠ 밖에 안되고 최대 45도 정도만 열리는 여닫이식 창문이라 몸을 빼내기 힘들었다.

3층에 있던 조현진(24ㆍ여)씨는 “방 창문으론 도저히 탈출이 힘들어 코를 틀어막고 복도로 나와 복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좁은 복도엔 쓰러진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희생자가 늘어나자 흉흉한 애기도 들린다. 고시원에 묵고 있던 이들이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나 노인 등 장노년층, 밤늦게까지 일하고 낮에 잠을 자는 노래방 종업원이어서 화재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고시원은 원래의 공부방에서 주로 영세 서민들의 거주용 공간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생존자들은 또 “화재경보기도 울리지 않았고 스프링쿨러도 없었다”고 했고, 한 주민은 “비상계단은 아예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경찰은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빠르게 번진 점, 석유 냄새가 난 점 등으로 미뤄 방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노래방 업주와 목격자 등을 대상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하지만 노래방 업주 정모(50)씨는 “새벽 늦게까지 술 마시고 노래방에 들어와서 자다가 나 역시 구조에 나섰다”며“불은 고시원에서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

유상호기자 shy@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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