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일 이산가족 상봉행사 전격 중단을 선언한 것은 남북화해의 출발점인 인도적 교류까지 단절하겠다는 극단적 선택이다. 북측의 이번 조치는 향후 사태 전개 방향에 따라 남북경협까지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북측의 이번 행동은 일단 미사일 발사사태 이후 쌀ㆍ비료 추가 지원을 보류한 남측에 대한 항의 표시로 보인다. 남북은 그 동안 쌀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주의 범주에서 다뤘다.
그런데 같은 바구니 안에 있던 남측의 쌀 지원이 미사일 문제 때문에 보류되자, 자신들도 이산가족을 볼모로 잡은 것이다.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북측의 잘못이 크지만, 인도적 지원 품목이라고 주장해왔던 쌀을 정치적 사안에 연계한 정부의 오락가락 태도도 비판의 소지가 크다.
북측은 13일 부산에서 결렬된 19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이미 강경 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북측 대표단은 12일 회담 전체회의에서 추석에 맞춘 이산상봉 문제와 쌀 50만톤 차관 지원 문제를 동시에 거론함으로써 이들 의제를 연계시키겠다는 의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회담 전부터 미사일과 북한의 6자회담 복귀로 의제를 한정한 남측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조차 거부했다. 그러면서 남측은 "6자회담 복귀 시까지 쌀 지원을 보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쌀을 받아가지 못한 북측 대표단은 회담이 끝난 뒤 발표한 성명에서 "북남관계에 예측할 수 없는 파국적 후과(결과)가 발생하게 만든 데 대해 민족 앞에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 심상찮은 파장을 예고했다.
북측은 이날 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도 이번 행동이 장관급회담 결렬에 따른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북측은 "귀측(남측)은 북남 사이에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인도주의적 사업으로 진행해오던 쌀과 비료제공까지 일방적으로 거부했다"며 "미국 일본에 동족 사이의 인도주의적 사업을 팔아먹은 것과 같은 반민족행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북측이 가장 민감한 고리 중 하나인 이산상봉 문제까지 건드린 데에는 자신들의 반발을 극적으로 표출해 남측 여론을 자극함으로써 미일의 대북제재 강경기류를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미일 등의 강경책이 남북간의 인도적 교류까지 훼손했다는 비판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북측이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남북관계 전반에서 단절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유엔 안보리 결의 등 주변의 거세지는 압박에서 북측은 외톨이 신세다. 중국이 등을 돌렸고 남쪽도 강하게 북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은 "미국 일본 쪽으로 치우치지 말라, 잘못되면 남북관계가 파탄 난다"는 신호를 던진 것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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