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드디어 3기 방송위원회가 출범했다. 2기 방송위원들의 임기가 만료된 것이 5월 9일이었으니, 새 방송위원회 구성이 두 달 이상 지연된 셈이다. 일정이 늦어졌더라도 인선만 제대로 됐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6월 말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3명의 방송위원을 추천한 이후 3기 방송위원 9명에 대한 선임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면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학계와 언론계 그리고 방송업계와 시민 단체에서는 3기 방송위의 구성을 앞두고 그 간 여러 차례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미디어 융합 시대에 차기 방송위가 갖는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새 방송위원의 선임은 철저히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따라줄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새 방송위의 인적 구성은 이러한 요구나 바람에서 한참 비켜서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또 다시 여당 쪽 사람 6명, 야당 쪽 사람 3명으로 귀결된 사실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듯이, 철저하게 정치적인 인선이다. 2기에 이어 이번에도 인선의 기준은 ‘전문성’이 아닌 ‘당파성’이었다. 또 2기에 이어 이번에도 소위 일부 ‘부적격 위원’에 대한 방송위 노조의 반발 때문에 새 방송위의 운영은 첫 날부터 파행을 겪는 등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일들이 3년마다 되풀이 되는 것일까? 아니 이런 악순환은 꼭 되풀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모습은 방송위원의 추천과 임명이 철저히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한, 누가 정권을 잡든, 어느 당이 여당이 되든, 또 어떤 사람이 방송위원으로 추천되든 매번 벌어질 것이다.
3년마다 방송위원 선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미디어는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지난 몇 주간 주요 언론사들의 보도 내용을 짚어보면 이들이 새 방송위의 구성과 향후 역할에 대해 도대체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고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나아가 이들의 보도 성향 역시 지극히 정치적인 잣대에 종속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예를 들면 보수적인 매체들은 한나라당이 추천한 인사들에 대해 시민 단체나 노조가 지적하는 흠결에 대해 입을 닫고, 진보적인 매체들은 제도권 밖에서 정부 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시민 사회 단체 출신들이 미디어 정책과 규제를 총책임지는 기관에 들어갔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
14일 새 방송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방송사 이기주의, 노조 이기주의, 언론 권력에 대해 얘기한 사실은 별다른 논평 없이 그대로 보도했지만, 정작 이날 당연히 논의의 초점이 되었어야 할 의제 - 방송위의 당면 과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새 방송위에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지 - 에 대해 심층 취재한 기사는 중앙일보(15일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한마디로 3기 방송위원 인선과 관련된 언론사들의 보도 내용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중앙 일간지는 물론 방송위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조차 몇몇 방송위원 선임을 둘러싼 논란을 간단히 소개하거나 임명장 수여 소식을 전하는데 그칠 뿐이다.
2기 방송위의 공과에 대한 냉정하고도 종합적인 평가라든가, 3기 방송위원 인선이 도대체 무슨 기준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방송위원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 외에 다른 기준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파헤쳐 보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프레시안만이 거의 유일하게 현 방송위원 추천 및 선임 방식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의 입을 빌려 전하고 있다.
신 위원장이 지적했듯이, 문제의 본질은 2기 방송위원 선임이 끝난 뒤 방송법 개정을 통해 여야 정치권이 방송위원 전원을 추천하는 제도를 바꾸지 못한 데 있다. 방송위원 선출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킬 수 있으면서 동시에 전문성을 갖춘 방송위원 선임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날 수 있음은 방송통신 융합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방송 부문을 담당할 전문가가 전무한 3기 방송위원 인선이 잘 보여주고 있다. 언론사들은 정치적 인선의 결과만 탓하기에 앞서 3년마다 되풀이 되는 악순환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윤태진 연세대 교수에 이어 김영찬 한국외대 교수가 19일부터 격주로 미디어 비평을 연재합니다. 김 교수는 한국외대를 나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김영찬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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