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대중을 지배하던 시대는 가고, 대중이 정치인을 지배하고 정치인들의 싸움을 즐기는 시대가 됐다. 반대를 즐기고 분노하고 공격하는 정치인이 유리하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말하고, 단순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제 정치인은 더 이상 통치하는 자가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원형극장의 검투사이거나,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는 격투기 선수 신세가 되었다.
정치컨설턴트그룹 ‘민’을 운영하는 박성민 대표의 주장이다. 대학교수들이 정치에 대해 하는 이야기와는 크게 다르다. 그 점을 의식했는지 박 대표는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교수들은 그걸 모른다며 왜 비호감도가 높은 정치인이 호감도 높은 정치인을 넘어서는지를 눈여겨 보라고 했다.
●더 이상 '통치' 못하는 정치인
나는 박 대표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원인에 더 관심이 많다. 박 대표는 정보화ㆍ세계화로 인해 개인적 편차에 따른 아젠다(의제)만 존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런 점도 있겠지만, 나는 민주투사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왕성하다 못해 과도하게 이루어진 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 시대의 업보라고 생각한다.
민주투사 열성 지지자들은 민주투사들이 춥고 배고프던 시절을 지나 권력의 자리에 올라 떵떵거리면서 과거 동료들에게 은전을 베푸는 모습에서 그 어떤 카타르시스와 더불어 개혁에 대한 열망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일반 대중의 생각은 달랐다.
대중도 처음엔 민주투사들의 화려한 변신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그들만큼은 이전의 권력자들과는 다른 ‘절제’를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과거에 굶주렸던 배를 뒤늦게 더 채워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은 권력 행사를 통해 그 어떤 보상을 찾고자 했음인지 독선으로 치닫기도 했다. 겸손은 없었다.
민주투사 그룹 내에도 서열은 있기 마련이어서 재미를 본 건 지도자그룹일 뿐이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 출세를 하면서도 이구동성으로 그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혁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야만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정녕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장기집권’을 위해서라도 자신들을 위한 홍보 이벤트를 자주 벌일 만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각자 억대에 육박하거나 억대를 넘는 연봉에서 조금이라도 떼내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이름없는 민주투사들이나 소외된 이들을 돕는 행사를 자주 벌였다면 자신들의 초심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대신 자신만을 위한 재테크에 신경쓰고 골프장으로 몰려 다니면서 정략 연구에만 몰두했다.
물론 사람 사는 게 더 거기서 거기니, 민주투사들에게만 특별한 그 무엇을 요구하는 건 기득권자들의 자기정당화 논리일 수 있다. 그들에게도 크게 잘못된 것일망정 한국의 보편적인 출세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들이 그걸 수긍하는 자세를 보이기보다는 기회만 있으면 당당하면서도 순진한 얼굴로 민주투사 시절의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불신을 키웠다는 데에 있었다.
●민주투사 레퍼토리에 대중 냉소
이런 상황에 대해 대중이 냉소 이외에 무엇으로 대처할 수 있으랴. 정치가 원형극장의 검투 혈전이나 이종격투기로 변질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은 열망없는 구경꾼의 심리로 싸움이나 즐기겠다는 자세로 돌아섰다. 이는 헌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뢰 회복이 제1의 개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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