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남해에서 서포를 만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남해에서 서포를 만나다

입력
2006.07.19 00:00
0 0

연일 무거운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서포 입석상 제막식을 앞둔 시간. 나는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마음이 무거웠다.

비가 무섭게 내리는 오후 우리는 예정되어 있던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ㆍ1637~1692) 선생의 입석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비 때문에 사람들은 많지가 않았다.

●유배지에서 문학을 완성한 서포

남해의 관계자와 서포 선생의 문중 후손들 몇십명만이 참석했을 뿐이다. 비가 내리누르는 텐트 안에서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에는 빗줄기가 잦아들더니 행사가 시작되자 마침내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서포에 대해 생각했다.

서포는 남해에 유배를 와서 그의 문학을 완성했다. 그의 대표작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다 유배의 땅 남해에서 탄생되었다. 먼 유배의 땅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금씩 적어 보냈던 것이 바로 ‘구운몽’이다. 유배의 땅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께 효도를 하고자 해서 날마다 소설을 썼던 서포의 마음을 나는 그려보았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일찍이 부모와 떨어져 산 경험이 있는 내게 서포의 마음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먼 유배의 땅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호롱불을 밝히고 밤새 편지를 썼을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 선명하게만 다가왔다.

서포는 남해에서 내게 가장 먼저 화두를 던진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그와의 만남에 대해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역사와 개인의 만남이고, 어머니를 함께 그리워하는 같은 가슴을 지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포 선생과 나는 시간은 달라도 서로 남해라는 동일한 곳에서 생의 어느 시간을 보냈다는 지역적 연고까지도 공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서포 선생의 마음은 시간의 강을 타고 내려와 내 마음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서포는 내게 마치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방문에 무언가 답례를 하고만 싶었다. 서포를 기리는 일. 그것이 내가 찾아낸 선생에 대한 답례였다. 나는 그 대답을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서포 선생을 기리는 일을 하자고. 서포 선생을 기리는 문학제도 개최하고 기념관도 만들자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왠지 그렇게 되었으면 좋을 것만 같았다.

●시작이 반… 시작이 가장 힘들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시작보다 어려운 것이 없다는 말로 해석을 한다.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것은 가장 힘든 고비를 넘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입석상 제막식이 서포 선생을 기리는 진정한 시작이기를 바랬다.

행사를 마치고 올라오는 산길에 다시 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하늘이 무정해 보였다. 빗소리가 마치 발자국 소리 같았다. 무정한 역사의 빗줄기를 뚫고 서포가 걸어오는 것은 아닐까. 나는 빗줄기 너머 저 아득한 곳을 바라보았다.

성전 남해·용문사 주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