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을 잡았네요.”
물난리를 겪은 강원도 주민들은 17일 쑥대밭이 돼 버린 삶의 터전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12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실종되는 등 최대의 피해를 입은 인제군의 한 직원은 “설마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한숨에는 당국의 안이한 상황 판단에 대한 아쉬움과 반성이 녹아 있는 듯 했다. 당국이 기상특보에 따라 비가 오기 시작한 15일부터 미리 손을 썼더라면 상당수 희생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강원도에서 발생한 사망(19명)과 실종(29명) 피해자의 절반 이상은 노인이다. 이들은 대부분 논에 물을 빼러 가거나, 밭에 물을 막기 위해 나갔다가 계곡물에 휩쓸려 희생됐다.
호우경보가 내려졌고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판단력이 부족한 노인들이 논밭에 나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말리는 당국의 안내방송이나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폭우가 쏟아지면 계곡물이 순식간에 불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깟 재산’을 지키려고 논밭으로 나간 노인들의 안전 의식도 문제지만 당국의 안이한 태도가 더 비난 받아야 하는 이유다.
시간당 60㎜ 이상 퍼붓는 폭우 속에서 눈깜짝할 사이 벌어지는 산사태와 급류 등을 ‘인재’(人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산사태(12명)보다 급류(36명)에 휩쓸려 내려간 희생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반영한다. 강원도는 6월 풍수해와 관련, ‘도민의 인명피해 제로 및 재산 피해 최소화 대책’ 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그러나 민관 모두 “설마 설마” 하는 안전불감증부터 치료하지 않는 한 ‘인명 피해 제로’ 대책은 한낱 구호에 그칠 뿐이라는 점을 이번 수재가 가르쳐주고 있다.
곽영승기자 yskwa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