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3시30분 충남 논산시 연무대읍 연무초등학교 3학년 교실. 20명 안팎의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방과후 교실 영어수업을 받고 있다. 교단에는 군인이 서 있다. 육군훈련소 소속 강민석(21) 일병이다. 같은 시간 바로 옆 4학년 교실의 영어 선생님도 같은 부대의 정강운(22) 일병이다. 이들의 원어민 못지않은 유창한 발음에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영어공부에 푹 빠져들었다.
# 외국어·미술등 전문강사 못지않은 지도… 학생들“방과후 교실 너무 기다려져요”
연무초교에는 이 달부터 군복 입은 선생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불과 100㎙ 가량 떨어진 육군훈련소의 기간병들이다.
“도시에서는 과목 당 몇 만원씩 내고 방과후 교실에 참여하지만 이곳 학생들은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유료 강사를 초빙할 수 없습니다. 실력 있는 강사를 구하기도 어렵죠.”
김덕상 교장의 고민이 깊어 갈 무렵 이웃사촌인 육군훈련소(소장 정두근)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각 분야에 실력 있는 장병들을 뽑아 학생들을 지도하는 봉사활동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영어 3명, 일본어 1명, 미술 1명 등 우선 6명의 기간병이 선택됐다. 이들은 일주일에 2번씩 학교를 방문, 1시간씩 학생들을 지도하고 돌아간다. 1인당 2만원 가량의 교재비는 학교에서 지원해주었다.
이들의 경력은 전문강사 못지않게 화려하다. 영어를 맡은 정강운 일병은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정치학과에 다니다 입대했다. 또 호주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유타스 대학에 재학중인 최민규(21) 일병도 영어회화반을 맡고 있다.
연세대 생화학과 2학년 휴학 중인 강민석 일병은 중학교 시절 부모님과 영국에서 2년간 생활해 영어에 능통하다. 강 일병은 최근 발에 화상을 입었지만 붕대를 감고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열정을 보였다.
또 일본어를 가르치는 박상환(22) 상병은 일본 리츠메이칸APU 대학 유학생이고, 미술을 맡은 황윤우(20) 이병은 순천대 만화예술학과 휴학 중이다.
군인 선생님들의 장점은 무료 봉사활동 외에도 방학 중에도 계속 수업을 해준다는 점이다. 사교육비에 허덕이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큰 혜택을 받는 셈이다.
학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다. “발음이 짱이에요.”, “방과후 교실이 너무 기다려져요.”, “씩씩하고 멋있어요.” 학생들은 군인 선생님이 오는 날에는 현관에 몰려 나가 기다릴 정도다.
전교생 207명 가운데 90여명이 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 대기자가 계속 늘어나 학교측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있는 실정이다.
강 일병은 “부대에서 조교로서 훈련병들을 교육하다 보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는데 어린이들을 만나면 활짝 펴진다”며 “군대생활의 또 하나의 보람이 됐다”고 말했다.
김장용 교감은 “군부대가 시골에 많은 만큼 다른 부대에서도 인근 학교에 이 같은 지원을 해주면 교육의 양극화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논산= 글ㆍ사진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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