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화랑인 갤러리 현대(서울 종로구 사간동)는 그 동안 국내 대가급 작가나 외국 유명 작가를 주로 소개해왔다. 13일 시작된 ‘트렌드-스포팅(Trend-Spotting) 2006’은 이 화랑이 처음으로 20, 30대 젊은 작가를 선보이는 단체전이다. 이연미(25), 신영미(27), 민성식(34), 신명선(34), 변웅필(36), 서은애(36), 남경민(38) 등 7명의 작품이 전시장을 전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형상성이 짙은 그림을 그리는 젊은 화가들이다. 가장 연장자인 남경민을 빼곤 다들 2000년대 이후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신진 작가들이다. 저마다 서로 다른 관심과 독특한 표현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젊은 세대 특유의 감각과 재치, 자신감이 두드러지는 작품도 많아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낸다.
25세 최연소 작가 이연미의 그림은 엽기적인 동화를 보는 듯 하다. 예쁘지만 섬뜩하다. 물 밖으로 머리만 내민 채 눈을 지그시 감은 귀여운 새는 살짝 다문 부리 틈으로 피를 흘리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새의 앞에 보이는, 두부 같기도 하고 푸딩 같기도 한 피 묻은 징검다리로 보아 뭔가 잡아 먹은 모양이다. 화면 전체의 부드러운 파스텔 톤은 이 그림이 감추고 있을 법한 모종의 잔혹극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시치미를 뗀다.
변웅필의 자화상 시리즈는 얼굴을 납작하게 일그러뜨리거나 여러 가지 물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다. 극사실로 그린 이 그림들은 무표정하면서도 매우 심각해 보인다. 자세히 보면 가로 방향으로만 붓질을 했다. 자유로운 붓질에 비해 고단하기 짝이 없는 이런 방식을 어떻게 봐야 할까? 자기절제? 금욕적인 고행?
남경민은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실내 풍경을 그린다. 그림 속 그림이나 거울에서 나온 나비가 화면 가득 날아다니고, 식탁에 놓인 투명한 유리병이나 컵에 깃털, 책, 손거울이 들어있는 장면은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마술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서은애의 산수화는 엉뚱하다. 전통적인 산수화에 코믹한 표정의 자기 모습을 집어넣어 익살스런 이야기를 펼친다. 몽유도원 같은 별천지에서 갖가지로 노는 모습이나, 암벽등반 파도타기 번지점프가 등장하는 ‘스포츠 산수’ 시리즈는 웃음을 자아낸다.
선명한 색과 대담한 구도가 인상적인 민성식의 그림은 자신감이 넘친다. 한 화면 안에서도 그의 시점은 저공비행으로 크게 돌다가 갑자기 특정 대상으로 돌진한다. 이처럼 자유로운 시점 이동으로 그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어딘가 있을 법한 공간을 그려낸다.
신명선은 부처나 보살이 앉는 연화대 위에 인터넷 성인 사이트에서 가져온 나체의 여인을 앉혀 놨다. 외설스럽지는 않지만 불경스런 이 그림들은 다분히 키치적이고 풍자적이다.
신영미의 그림은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몽환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머리를 길게 땋은 나신의 소녀들이 숲에서 그네를 타거나 나무에 묶여 있거나 오리를 타고 노는 장면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내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갤러리 현대는 “출신학교 등을 전혀 따지지 않고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있고 탄탄한 실력을 갖춘 젊은 작가들을 골랐다”고 말한다. 미술평론가 유경희는 이번 전시의 도록 서문에서“이들의 작품이 미학적 쾌를 유발하고 있음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삶과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유라는 철학적 차원으로까지 확산됐는지는 질문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흐름(트렌드)에 점찍기(스포팅)라는 이번 전시의 의도대로, 이들이 미술의 지형에 의미있는 방점을 찍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은 관객의 몫이기도 하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02)734-6111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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