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이 마지막 날인 14일 한국 정부의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을 둘러싸고 한ㆍ미 양국이 정면충돌함에 따라 9월로 예정된 3차 협상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특히 한국측은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을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미국측은 한국이 FTA 정신을 훼손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자칫 의약품 문제가 FTA 협상 타결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ㆍ미 양국의 충돌은 협상 이틀째인 11일 의약품ㆍ의료기기 작업반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미국 협상단은 한국측의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에 대해 항의한 뒤 협상을 중단하고 다음날로 예정돼있던 작업반 회의를 취소했다. 미국은 이어 의약품 문제를 이유로 13일로 잡혔던 무역구제와 서비스 등 2개 분과 회의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한국도 미국이 14일로 예정된 무역구제 분과 이틀째 회의와 서비스분과 회의 참석를 거부하자 상품무역과 환경 분과를 취소했다.
미국이 문제를 삼은 부분은 건강보험 약가 책정 방안의 ‘포지티브 시스템’(선별목록)이다. 이는 효능을 인정받은 신약이라고 해도 모두 건강보험 적용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등재하는 방식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추진방안을 발표해 9월부터 포지티브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허가된 의약품을 대부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시키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시행해왔다.
미국은 9월로 예정된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의 시행 일정을 취소하고 대체 방안을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른바 FTA 협상 개시의 4대 선결 조건중 하나로 지적해온 의약품 문제에 대해 한국측이 사전에 약속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을 당시 FT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기존 제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며 강력 반발했다.
한국 협상단 관계자는 “협상에서 밀고 당기는 일이 있기 마련”이라며 “결렬이 결코 아닌 만큼 FTA 협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ㆍ미 양국은 2차 협상 결과를 토대로 8월 상반기에 상품, 농산물, 섬유에 대한 양허안을 일괄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양허안 틀이 완전히 합의되지는 않았지만 양허안 교환을 통해 3차 협상부터 사안별로 본격적인 격론을 벌인다는 시나리오다. 이혜민 한ㆍ미 FTA 기획단장은 “양측이 각자의 원칙에 따라 관세감축 계획을 담은 양허안을 제시하면 된다”며 “양허안에 대해서는 개별 품목별로 적정성을 따지고 품목별로 조기 감축 등을 서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3차 협상은 9월 미국에서 열린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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