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불원천리 오셨으니 나라를 이롭게 할 의견이 있소?” “왕께선 하필 이익을 말씀 하시나이까(王何必曰利).…인의(仁義)일 따름입니다.”(맹자 양혜왕편 상)
1845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은 서구 제국주의와 신흥 일본의 발톱에 발기발기 찢겨 나가며 ‘아시아의 병부(病夫)’로 전락해 간다. 중국 문명은 그때까지 이(利)나 병(兵), 즉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앞서 도의(道義)를 내세우는 공맹의 전통을 잇고 있었다. 항산항심(恒産恒心)은 무지한 백성들 잘 다스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럼 도대체 서양 힘의 근원은 무엇이며 중국 몰락의 이유는 무엇이고 부국강병의 방법은무엇인가. 지식인들은 묻기 시작했고,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 의화단사건, 신해혁명, 군벌의 난립, 공산주의 등 숱한 실험이 이어진다. 이 역사의 격랑에서 량치차오(梁啓超), 루신(魯迅), 마오쩌둥(毛澤東) 등은 모두 한 사람에게 빚을 졌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등을 번역해 중국 지성에 서양문명으로의 문을 열어 준 옌푸(嚴復 1854~1921).
대개의 역사책에서 옌푸는 그저 번역가로 이름이 스쳐갈 뿐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화에서 번역이 가지는 의미를 따져본다면, ‘중국판 후쿠자와 유키치’라 할 만하다.
생전 미 하버드대 교수로 중국학의 대가였던 저자는 부국강병을 향한 중국의 몸부림과 한계, 좌절 등을 옌푸라는 거울로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와 학문에 두루 깊은 지식과 통찰력을 갖춰 학자 중의 학자로 불렸던 저자의 공력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부친의 죽음으로 과거의 길을 접은 옌푸는 1770년대 제국주의의 심장 영국에 발을 디뎠다. “영국이 가진 힘의 궁극적 원천, 서양 문명의 핵심적 본질은 무엇일까.” 중국이 서양에 무릎을 꿇은 건 ‘물질주의 대 정신주의’라는 단순한 도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회진화론의 허버트 스펜서를 사상적 스승으로 해 옌푸는 서양 성공의 열쇠가 개인의 역동적 에너지의 발현, 즉 자아 실현과 현실 참여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에너지를 규율화해 집단목표로 나아가게 하는 공공 정신(Public Spirit).
쉼 없는 번역 작업으로 중국 근대화의 필두에 섰던 옌푸지만 지식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계몽적 태도로 일관했고, 전통과의 인연도 끝내 끊지 못했다. 예를 들면 번역할 때 서양사상의 개념과 범주를 굳이 고대 양식의 중국어에 짜 넣으려 했다. 주장만 있고 실천은 없었다. “선생은 사상가지만 난 행동가요.”(쑨원ㆍ孫文) 그는 결국 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중국의 혼란을 보며 서양 진보에 회의를 느낀다. 그의 말년은 어떠했을까.
저자는 생전 제자인 도올 김용옥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첫 장에 “한 세기 전에 태어났다면 너도 이같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낯선 옛 중국인의 삶을 지금 새삼스레 암흑에서 건져내 들여다보는 이유도 여기 있을 듯 하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