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는 얘기 듣지 않고 강행하더니 무슨 꼴인가” “아니다 잘 한 것이다”
차기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결렬된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두고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과 보수진영에서는 “이럴 바에 왜 회담을 했느냐”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상황이 엄중할수록 대화가 필요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북쪽 지도부에 미사일 발사에 대한 우려와 6자회담 복귀 필요성을 촉구한 것만으로도 회담은 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논리다.
북한이 5일 미사일을 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며 장관급 회담을 예정대로 11일부터 진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동보도문 작성을 위한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한 채 예정도 채우지 못하고 회담이 깨졌다.
야당은 이와 관련, 회담 강행론을 폈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몰아세우고 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14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종석 장관이 중대한 판단 착오를 했다”며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이 장관은 실패가 예견된 회담을 강행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이 장관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회에서도 철저히 따지겠다”고 거들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어차피 의제와 관심사항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만나봐야 충돌할 수밖에 없는 회담이었다”며 “북측의 선전장이 될 게 뻔한 상황에서 왜 회담을 열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대화를 하지 않는 것도 회담 전략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권은 이 장관을 적극 옹호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회담을 한 것은 잘한 일이고, 북측 의도에 말려들지 않고 남측의 여론을 전달한 것도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했다. 김근태 의장은 “복잡하고 중대한 상황에서 장관급 회담을 개최한 것은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회담이었다”고 밝혔다.
이종석 장관도 이날 국정브리핑 기고문에서 “이번 회담을 왜 했냐고 묻는 분들에게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고 따졌다. 이 장관은 특히 “94년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집권시절 북미갈등과 남북갈등이 동시에 진행되다가 북미간 데탕트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남북대화는 수년간 단절됐던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나라당을 거명하며 반박했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대북 채널을 끊는 바람에 한국 정부가 북핵 협상에서 배제됐던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다.
정부는 일단 “북측 대표단에게 할 말은 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회담은 결렬됐지만 한미동맹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공조에 발맞춰 북한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섣불리 ‘선군정치’ 발언까지 공개, 북측을 몰아세우려다 결국 회담 판만 깬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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